"아나운서로 얻은 신뢰도 팔아 돈벌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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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는 최근 온라인에서 가장 인기있는 검색어중 하나이다. 아나운서들이 뉴스프로그램 대신 오락프로그램에 더 많이 출연하면서 '스타'반열에 오르는 것이 흔한 일이 됐다. 또 여성 아나운서들은 미인대회 출전이나 모바일 화보 출연으로 끊임없이 화제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직 아나운서들은 이같은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KBS의 강성곤 아나운서는 "아나운서답지 않아야 오히려 대접받는 세태가 슬프고 안타깝다"고 개탄했다. 강 아나운서는 12일 본지에 '아나운서답지 않아야 대접받으니…'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보내왔다. 그는 이 글에서 "아나운서의 연예인화는 우선 뉴스앵커로서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데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방송프로그램의 '진행'에 대한 개념이 신뢰와 따뜻함 대신 '설정'에 따른 재미와 오락성만 추구하는 식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 아나운서는 KBS아나운서협회장을 거쳐 현재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장정훈 기자 (cchoon@joongang.co.kr)


[오피니언] 아나운서답지 않아야 대접 받으니 …

강성곤 KBS 아나운서 '정체성 혼란'에 쓴소리

아나운서 논란이 연일 뜨겁다. 비키니에서 모바일 화보, 재벌과의 혼사 등으로 이어진 기사가 가십성을 넘어 '아나운서의 정체성' 담론으로까지 확장되는 양상이다. 비슷비슷한 현상에 대한 접근과 상황 파악, 대안 모색 등을 접하면서 빠진 것 두 가지를 현직 아나운서의 눈으로 요약하련다.

우선 뉴스 앵커로서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정말이지 아나운서에게는 치명적인 것이다. 근본적 요인은 아나운서의 프리랜서화에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이들의 잦은 광고 출연 때문이다. 보도는 공정성.객관성.중립성을 근간으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업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핵심이다. 저널리스트는 그래서 광고와 거리가 멀다.

그런데 저널리스트의 한 축으로 믿었던 '프리화된' 아나운서(엄밀한 의미에선 자유 방송인)들의 옹색한 광고 속 얼굴 내밀기는 당혹스럽다. 이들은 지상파 아나운서로서 얻은 신뢰감을 광고 출연료로 맞바꾸면서도 아나운서라는 명칭에는 이상하리만치 집착한다. 그것은 일반 연예인과 차별되는 이미지로 자리 매김해야만 유리한 시장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부분이 저널리스트이면서 방송사 구성원인 아나운서의 정체성에 혼란을 주는 동시에 직업적 위상과 신뢰감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정밀한 리딩(reading)이라는 전통적 가치에 기대보지만, 프리랜서들의 준동으로 이미 변질.왜곡된 아나운서들을 바라보는 보도 분야의 시선은 싸늘할 수밖에 없다. 편집.취재 업무를 바탕으로 코멘트의 리얼리티(reality) 측면에서 앞선다고 자평하는 기자들의 뉴스 캐스터화는 나팔 불려던 차에 원님을 만난 셈이다.

다른 하나는 '진행' 개념의 변화 내지는 평가절하 추세다. 언제부터인가 TV에서 신뢰와 따뜻함,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하는 진행자가 보기 힘들어졌다. 이는 MC가 프로그램의 기승전결을 이끌어가던 방식이 과거의 일이 됐음을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MC 역할의 축소를 대세로 하되, 필요할 경우 '맞춤 MC'의 테크놀로지가 구사되기도 한다. 핵심기술은 '설정'이다. 연예인들의 짓궂고 모진 놀림에 희생양이 되다가 출연자의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우(愚)를 범하고는, 불현듯 고난도 우리말의 전문가가 돼 준엄한 심판자로 변신하는 20대 여자 아나운서, 그녀가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MC가 되는 세상. 전문성과 노련미는 이런 '설정'의 위력 앞에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런 판국에서 정확하고 아름다운 한국어를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숙지해 미덥게 진행하고 전달하는 아나운서의 본령은 설 자리를 잃는다.

아나운서가 아니더라도 '능력 있는 자'가 뉴스와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는 명제는 틀리지 않는다. 아나운서가 변화와 자기개혁에 미온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나운서가 아나운서답지 않아야 오히려 대접 받는 오늘의 세태는 슬프고 안타깝다.

강성곤 KBS 아나운서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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