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봉투와… (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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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학급반장을 맡은 여중생이 학급비품 하나 마련하지 못하는 「가난」을 비관하여 자살했다. 어제 신문의 이런 보도는 우리에게 조그만 충격과 함께 당혹감을 준다.
경기도 구리시에 사는 장주혜양은 올해 14세의 중학 2년생. 1학년 때 같은 학년 여학생 4백30명 중 줄곧 1등을 하여 임시반장으로 뽑혔다.
주혜양의 집안은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뒤 형편이 어려워져 어머니가 식당에 나가 번 돈으로 간신히 살림을 꾸려왔다. 그런 장양에게 학교에서 교실에 걸 거울을 하나 가져오라고 했다.
당장 끼니도 어려운 형편인데 거울을 살 돈이 있을 턱이 없었다.
주혜양은 혼자 속으로 고민고민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근 수년간 우리 주변에는 학업성적부진을 이유로 목숨을 끊는 청소년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입시위주의 교육제도가 낳은 부작용이기도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사회의 오도된 가치관이 빚은 사회병리현상이기도 하다.
주혜양의 자살은 단순히 「가난」 때문이었다. 다른 급우들은 철마다 「봉투」를 들고 가 선생님을 기쁘게 하는데 자신은 하찮은 거울 하나 마련할 수 없다는 게 죽기보다도 싫었다. 학교에서 『거울을 못하겠으면 손걸레라도 만들어오라』고 했지만 주혜양의 자존심은 그것을 용납 못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요즘 청소년들의 그런 사고방식이 우리를 당혹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교육자들의 학생들에 대한 지나친 무관심이다. 평소 집안형편이 어려운 데다 성격이 내성적이고 소심한 학생이라면 아예 그런 부탁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안그래도 요즘 우리의 교육현장을 들여다보면 학교살림을 꾸리는데 학부모의 부담이 너무 무겁다. 낡은 책상과 걸상바꾸기,교내방송시설,VTR설치는 물론 조경수,환경미화 페인트비용에다 심지어는 화장실비누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모두 학부모들의 주머니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자발찬조」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학교의 간청을 매정하게 뿌리칠 그런 강심장의 학부모가 어디 그리 많은가.
이런 얘기가 있다. 어떤 학부모가 학교에서 요구한 액수에 크게 미달되는 봉투를 가지고 갔더니 담임교사가 『집에 가서 콩나물 사는 데 보태쓰라』고 했다던가. 그런 의미에서 주혜양의 죽음은 많은 여운을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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