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실천이 과제다/국제 인권규약과 변호인 접견권(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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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제안한 유엔의 인권규약 가입동의안이 최근 국회 외무통일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것은 우리나라 인권사에 형식상으로나마 하나의 전기를 마련한 매우 뜻깊은 일이라 생각된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삶의 권리가 옹호돼야 한다는 염원에서 유엔은 지난 48년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했으나 구속력이 없어 실효를 거둘 수 없었다. 그래서 이 내용을 조약화하고 그 실천을 의무화한 것이 국제인권규약이며 66년 유엔총회가 채택,대부분의 국가들이 선택적으로 가입해 있다.
정부는 지난 85년 국무회의 의결로 가입을 결정하긴 했으나 「국내여건」으로 적극성을 보이지 못하다가 이제 민주화ㆍ국제화 추세에 맞춰 가입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이와 때를 같이해 대법원이 어제 구속된 피고인ㆍ피의자의 변호인 접견ㆍ교통권은 누구도 제한할 수 없는 헌법상의 권리라고 결정한 것은 인권보호를 위한 대내ㆍ외적 장치를 함께 마련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발전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
인권이란 존중돼야 할 최고의 가치라고 떠벌리면서도 국가의 체제나 환경에 따라서는 무시되거나 또는 마치 권력자의 시혜에 의해 부여되는 것처럼 오도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인권을 위한 법적ㆍ제도적 감시 또는 옹호장치가 힘을 갖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슴없이 자행된 인권유린 관행이 최근들어 크게 개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유감스럽게도 만족스런 상태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임의동행이란 형식의 사실상의 구속,피의자에 대한 가혹행위,근거없는 수색ㆍ검문,수사관의 무례한 언행,수사ㆍ재판의 지연,변호인의 접견,교통 방해 등이 현실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미비점들이 이번 국회에서의 인권규약가입의 결과 대법원의 결정에 의해 눈에 보이게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국제인권규약 가운데 우리가 이번에 가입을 유보한 예외없는 결사의 자유나 완벽한 남녀평등 따위의 4개 조항은 당장은 우리의 법 또는 관습및 국민감정에 상충된다 할지라도 장차는 이에 가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어느 국가나 자기네 실정에 따라 선택적으로 규약에 가입하는 것이 관례이므로 시일을 두고 법과 국민의식의 선진화를 이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인권규약의 가입결정을 환영하면서도 가입만으로 곧 인권보장이 약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고자 한다. 특히 정부의 의도가 국제사회에 우리 인권상황의 호전된 이미지를 과시하는 효과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또한 피의자의 변호인 접견ㆍ교통권에 대한 결정이 형식상의 장식에 그치지 말고 수사과정에서 피의자에게 인식되고 이행되기를 기대한다.
좋은 제도란 중요하긴 하나 이 제도를 실천하고 이행하려는 노력이 정부나 국민 각자에게서 이뤄지지 않으면 그 제도 자체가 무력화되고 냉소의 대상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북한이 우리보다 훨씬 먼저 세계인권규약에 가입했으면서도 인권국가라는 평판을 못받는 것은 그 단적인 사례일 것이다. 외형과 제도의 완비와 함께 그것을 실천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내실을 충족시키는 절대조건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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