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 30대 감독 "전성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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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3년전부터 영화계의 「무서운 아이들」로 주목받던 30대 감독군이 90년대 들며 전성기를 맞고 있다.
현재 30대 주력군단은 장선우 유영진 박광수 장길수 신승수 강우석 곽재용 안재석 정한우등.
최근 흥행호조중인 영화는 대개 이들의 작품이며 특히 올 대종상(16일·국립극장)의 각종 수상을 휩쓸 것으로 보여 30대의 위세를 실감케 하고 있다.
영화계는 이들의 뚜렷한 현실인식에 바탕을 둔 작가정신이 무엇보다도 한국영화계 고질중의 하나인 리얼리티 결여를 씻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또 이들은 흥행성에서도 전 세대보다 한발 앞서 있어 제작자들과의 호흡도 잘 맞추고 있다.
올 대종상 출품작 『우묵배미의 사랑』을 연출한 장선우감독(38)은 86년『서울 예수』로 데뷔, 두 번째 작품 『성공시대』로 11만 관객을 동원했었다.
시나리오·평론등도 쓰는 장감독은 서민들의 삶 속에 흐르는 건강한 생명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장감독과 같은 해인 86년 『비창』으로 데뷔한 유영진감독(38)은 『추억의 이름으로』로 88년 대종상 신인감독상을 받았고 올해엔 『물의 나라』를 출품했다.
유감독은 권력·금력에 매달려 바둥대는 현대인들의 극단적 이기주의를 즐겨 다루고 있다.
현재 대히트 행진중인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를 연출한 장길수감독(35)은 85년 데뷔작 『밤의 열기 속으로』로 대종상 신인감독상을 받은 화려한 출발을 보였다.
장감독은『아메리카 아메리카』에서는 젊은 군상들의 무분별한 아메리카니즘을 비판했고 『불의 나라』에서는 물질만능의 세태를 풍자했다.
장감독은『추락 …』과 『불의…』를 대종상에 내놓았다.
장감독과 함께 영상연구회등에서 연출공부를 함께 한 신승수감독(35)은 85년『장사의 꿈』으로 첫발을 내딛고 이어 『달빛 사냥꾼』『성야』『빨간 여배우』등을 발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중년남성의 자아회복을 그린 『수탉』을 올 대종상에 내놓은 그는 제도나 집단 속에서 자아를 잃어가는 현대인들의 병적상태를 짙은 풍자로 그려내고 있다.
강우석감독(31)의 경우는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하나씩 꼬집어내 일관되게 코미디형식으로 처리하는 편.
88년 데뷔작 『달콤한 신부들』은 농촌총각문제를, 89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청소년입시문제를, 그리고 올해의 『나는 날마다 일어선다』는 고학력 실업문제를 짚었다.
강감독은 제작자가 내부문제 때문에 대종상에 불참, 유력시되던 신인감독상을 놓치게 돼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지난해 세계1백6개국과 수출계약을 해 화제를 모은 영화 『죄없는 병사들』을 연출한 정한우 감독(31)도 앞으로 전쟁물이나 액션물에서 솜씨를 보여줄 만한 재목.
한편 곽재용(31), 안재석(30)감독등은 스스로 독립 프러덕션을 차려 영화를 만드는 30대의 막내격이다.
스케치풍의 청춘물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히트시키고 있는 곽감독은 앞으로도 젊은이들의 사랑·방황·미래에 대한 열정등을 감각적인 터치로 카메라에 담아낼 계획이라고 말한다.
「청기사그룹」이란 독립 프러덕션을 차린 곽감독과 마찬가지로 「시네피아」를 운영하는 안감독은 데뷔작 『회색도시Ⅱ』가 89년 좋은 영화에 뽑힐 만큼 연출 자질이 대단하다.

<이헌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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