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축적 없는 경제는 허상/교육ㆍ사회 분위기로 진흥책 펴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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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나라 기술수준의 낙후현상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최근 잇따라 발표된 국제기술 수준 비교에서 드러난 우리 기술의 현주소는 새삼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상공부의 기술수준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기계자동화ㆍ설계ㆍ합금 등 핵심 기술부문에서 선진국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으며 컴퓨터 기술은 대만보다도 뒤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2일자 중앙일보 일부지방은 3일자 보도)
바로 한달전 한국은행은 산업생산에 대한 기술의 기여도를 나타내는 기술규모 지수를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미국의 1백,일본의 82에 훨씬 뒤처진 7에 머물러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기술개발 능력을 가늠하는 연구비 지출규모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뒤떨어져 있다.
경제규모ㆍ소출액ㆍ소비와 같은 표피적인 지수의 급상승만을 보고 우리는 마치 우리경제의 내실이 선진권의 수준에 발빠르게 근접해 가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기술수준과 기술개발 능력의 엄청난 낙후성을 부각시킨 최근의 발표들을 계기로 우리 경제의 발전단계에 대한 우리 자신의 허상이 참담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90년대의 국가발전이 기술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것은 이제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인식이다. 기술력이 경제력ㆍ국방력,그리고 심지어는 정치력을 결정하며,따라서 기술이 곧 국력이라는 명제가 설득력을 더해 가고 있다.
당면한 경제침체의 주인으로 흔히 지목돼온 환율ㆍ임금ㆍ노사분규 문제는 실상 일과성 요인들에 불과하며 경제활력 회복의 장기적ㆍ본질적 처방은 역시 기술력의 배양에서 찾아야 한다. 외국기술의 모방,단순한 개량의 수준에 더이상 머물러 있다가는 선진국과의 경쟁은커녕 바싹 뒤쫓는 후발개도국들의 추격에도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게 돼있다.
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근본대책이 기술발전에 있다는 판단아래 80년대초부터 기술입국을 지향하는 온갖 시책들이 줄기차게 제시되고 추진돼온 것은 바람직한 일로 평가된다.
지난 2월에 발표된 「첨단기술 및 산업발전 7개년계획」은 38조원의 투자와 각종 조세ㆍ금융혜택의 제공,그리고 계획 추진을 뒷받침할 임시조치법의 제정까지를 예고하면서 보기 드문 의욕을 밝히고 있다.
기술발전의 촉진에 있어 갖가지 정책적 세기들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겠지만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술의 배양에 적합한 사회 경제적 기초조건의 성숙이라는 점을 정책당국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개인이나 기업으로 하여금 기술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가장 유익하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 믿음은 정부의 약속에 의해서가 아니라 눈앞의 사회현실 인식에서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라야 한다.
쉬운 예로 상대출신 대졸사원이 은행과 관공서를 대상으로 한 로비활동 또는 재테크로 올린 이익이 이공계 사원의 기술개발에서 얻은 이익보다 항상 더 크다면 기업주는 상대출신을 더 중용할 것이다. 이런 관행을 온존시키는 사회구조에 변화가 없는 한 뻔히 내다보이는 기술인력 부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와함께 개개인의 기술개발 능력은 학교시절부터 함양되어야 하는 것인 만큼 입시 위주의 주입식 학습을 지양하고 창의력을 살리는 방향으로 교육의 내용과 제도에도 일대 수술이 가해져야 한다.
정부는 작은 기법들과 큰 분위기를 균형있게 배려한 기술진흥책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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