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미술품 진위구별 "속수무책"|수입물량 급증....전문 감정인·감정기관 없어 미술계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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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국내 미술계는 가짜 해외미술품이 판을 쳐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나.
2∼3년전부터 해외미술품이 상당수 수입되고 있으며 특히 올해부터 해외미술품 수입이 자유화됨에 따라 수입물량이 급증할 전망이나 현재 국내 미술계에는 해외미술품의 진위여부를 확실히 가릴만한 전문감정인이나 감정기구가 전혀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외국작품에 대해 가짜 시비가 벌어져도 어느 한사람 나서서 자신있게 이를 판별할 수 없다. 그저 외국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평론가·학자들이나 외국작품을 많이 다뤄 본 화랑관계자들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세우는 것이 고작이다.
국내미술품에 대해선 화랑협회에 감정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어 작품의 진위여부를 감정하고 감정서까지 발행하고 있으나 이 감정위원회마저 전혀 법적 뒷받침을 갖추지 못한「자문기구」일 따름이다.
지난 82년3월 설치된 이 감정위원회는 한국화·서양화 2개 분과로 나뉘어 각 각 7명의 평론가·작가·화랑관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감정위원회는 지난 8년동안 모두 1백50여점 외 작품을 감정했는데 이 가운데 25%가량이 가짜로 판명됐다.
그러나 이 감정결과는 화랑협회차원의 결정일뿐 가짜시비가 법정으로 비화할 경우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고서화의 경우도 고미술협회 감정위원회가 있으나 사정은 마찬가지다.
미술계에선 이 같은 실정에서 해외미술품이 쏟아져 들어오게 되자 어떻게 가짜를 가려낼 것인가를 놓고 묘안을 찾아내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미술계에선 현 실정으로는 국내작품감정의 경우와 같이 감정자문기구를 설치하거나 외국의 믿을만한 화상으로부터 작품을 구입하는 길밖에 없다고 보고있다.
평론가 이일씨는 『우선 임시방편이지만 외국작품에 대해 안목이 높은 미술사가·작가·화랑관계자들로 감정자문기구를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하루 빨리 전문감정인을 양성해 이에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한편 두손갤러리 대표 김량수씨는『70년에 수입시장을 개방한 일본마저 아직도 자신들의 감정 능력을 믿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각 화랑들이 믿을 만한 보증서가 붙은 좋은 작품만을 선별, 수입하는 것만이 가짜 유통을 막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해외미술품에 대한 감정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것은 최근 재미동포 김홍석씨(48)가 피카소·미로·고호 등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을 대거 들여와 지난15∼27일 제주문예회관에서 전시회 (세은컬렉션전)를 열면서 비롯됐다.
이 전시작품들은 특히 김씨의 수집경위가 밝혀지면서 미술계 일부에서『가짜일 가능성이 높다』는 강한 의아심이 일었다.
김씨는 국내에서 중앙신학교를 졸업한 후 목판화를 공부하려고 지난 82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최근까지 불법체류자로 미국에 머물며 한 달에 1천여달러를 벌면서 근근히 살아왔다고 스스로 밝혔었다.
이 같은 김씨가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을 버륙시장등에서 10∼20달러씩에 구입했다고 주장하고 나서자 미술관계자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김씨의 소장작품들에 대해 이 같은 물의가 일자 3월17일부터 서울전시회를 열기로 계약한 현대미술관(관장 김종근)측은 관계전문가들로 임시 감정위원회를 구성, 김씨가 들여온 69점을 감정한 다음 진품으로 판별된 작품에 한해서만 전시하기로 했다.
현대미술관은 또 이 작품들에 대해 김씨와 함께 공개토론회를 열 것도 검토하고 있다.

<이창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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