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이주 어린이 안정감 해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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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전세집을 비워주어야 하거나 직장 전근 또는 특정학군 선호등 갖가지 이유로 자주 이사를 다닌 학부모 중에는 초등학생 자녀가 새로운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주부 김영숙씨(39·서울서초구 잠원동)는 『새로 이사온 후 밤에 자주 잠을 깨고 친구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엄마지갑에서 몰래 돈을 빼내 친구들에게 먹을 것을 사주기도 해요』라며 혼내주려고 종아리를 때린 후 아이가 불쌍해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김씨는 경기도 부천에서 서울 미아동으로, 다시 잠원동으로 이사하느라 초등학교5학년인 아들이 세 번 학교를 옮겨야 했다.
주부 한숙현씨 (36·서울은평구대조동)는 남편이 본사발령으로 근무지였던 미국에서 돌아와 4학년인 딸 때문에 걱정이 태산같다. 한씨는 『딸이 아예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하루종일 오락기와 씨름하거나 밖에 나갔다가도 뜻대로 안되는지 자주 울고 들어온다』고 했다.
특히 최근 특정학군을 선호해 이사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 잠원초등의 경우 1학년은 한 학급당 보통 55∼56명씩 6반으로 3백30여명에 불과하나 도중에 학생들이 전학해 와 6학년에 이르면 학생 수가 약 8백70명(67명씩 13학급)에 달해 이같은 현상을 말해주고 있다. 학동초등학교(서울강남구논현동)도 1학년은 2백50명 정도지만 6학년은 약5백명으로 2배에 이른다.
이 학교 김종명교사(6학년 담임)는 『전학을 자주 하는 어린이는 대개 산만하고 안정감이 부족하며 친구들에게 깊은 정을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서울대의대 조수철교수(소아정신과)도 『어린이가 주변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학교거부 증상이 생겨나고 심하면 행동장애·우울증세까지 일으킨다』고 우려한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주 이사할 경우 이같은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우선 신경 써야 할 점은 새로운 주거지 선택에 어린이의 의사가 고려된 듯한 기분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서강대 김인자교수(교육심리학과)는 조언한다.
어떤 행동 결정에 자신의 의지가 반영되면 사람은 심리적으로 그 행동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 적극성을 띠게 된다는 것.
이사가 결정된 후 이사가기까지 평균 한 달 정도의 여유가 있는데 이 기간동안 어린이를 새로운 동네에 몇 번 데리고 가 이웃에 인사하고 새 학교를 방문해 선생님과 얘기도 나누며 학교환경등을 익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김교수는 말한다.
또 집 근처의 도로나 상점, 앞으로 이용할 소아과·치과등을 둘러보며 새 집의 벽지 선택등에도 참여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어린이는 자신의 의사와 무관한 결정에 피해를 본다고 느낄 경우 더욱 반발하게 되므로 어린이의 참여와 요구를 가능한 한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조교수는 어린이에게 정들었던 이웃을 떠나 이사해야 하는 이유를 알아듣도록 설명하고 전학 후 3개월 동안은 어린이의 학교생활 적응 여부를 면밀히 관찰하고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김교사는 『전학 온 어린이에 겐 수업시간에 자주 시키거나 얘기를 나눠 이질감을 덜어주려고 애쓰며 가능한 한 학급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어린이 옆에 앉혀 친하게 지내도록 한다』며 『학부모에게는 방과후 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서먹한 분위기를 풀어주도록 권한다』고 말했다. <고혜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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