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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첨가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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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커피 크리머. 우리에겐 프림이란 이름으로 더 친근하다. 우유로 만든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주원료는 유지(油脂)다. 여기에 물을 부은 뒤 유화제.증점제.pH조정제.착색제.향료로 맛과 향과 색깔을 낸다. 유화(油化)제는 물을 기름과 섞어 우유처럼 만든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우유 특유의 끈적끈적함이 없다. 해결책은 첨가물. 증점제는 멋지게 끈끈함을 만들어 낸다. 캐러멜 색소는 마무리용이다. 희미한 갈색 톤은 진한 우유 느낌을 준다. 물론 보전 기간을 늘리는 pH조정제, 우유 맛을 내는 향료는 필수다.(아베 쓰카사 '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 첨가물')

싸구려 케이크는 어떨까. 돼지 비계가 주원료다. 생선 기름도 쓰인다. 대형 프로펠러로 공기를 넣으면 돼지 지방은 잔뜩 부푼다. 물론 아직은 케이크로 내다 팔 물건이 못된다. 해결사, 첨가물이 등장한다. GMS, 글리세롤 모노스테아레이트다. 이놈은 비누와 성질이 비슷하다. GMS를 넣고 지방에 물을 부으면 물은 기름에 부드럽게 녹아든다. 여기에 밀가루와 설탕 조금. 그러나 아직 보기 흉하다. 콜타르 색소로 덮어 모양을 낸다. 그래도 여전히 맛이 문제다. 먹음직스럽도록 향료가 들어간다.(데이비드 보더니스 '시크릿 하우스')

첨가물은 현대판 '마법의 가루'다. 쓰레기를 진수성찬으로, 불량식품을 명품으로 둔갑시킨다. 진물이 흐르고 물컹거리는 명란젓도 하룻밤만 첨가물에 담가 놓으면 만사형통이다. 윤이 잘잘 흐르고 갓난아이 피부처럼 탱탱해진다. 이를 위해 씹는 맛을 내는 탄성강화제, 맑은 색깔을 내는 착색제, 맛을 내는 향료 등 약 20가지의 첨가물이 들어간다고 한다.

'첨가물 반대 전도사'로 불리는 일본의 아베 쓰카사는 "한 샐러리맨이 아침 샌드위치, 점심 돼지고기와 김치볶음, 저녁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었다면 최소 60가지 각기 다른 첨가물을 섭취하게 된다"고 했다.

이번 주부터 국내에서도 식품 첨가물 완전 표시제가 시작된다. 지금까지는 주요 첨가물 다섯 가지만 표기했지만, 모레부턴 모든 첨가물을 표기해야 한다. 국내에서 허가된 식품 첨가물은 모두 615종. 이 중 419 종이 합성물질이다. 하나씩은 문제가 없다지만, 많이 섞이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뒤늦게나마 뭐가 들어갔는지는 알고 먹게 됐지만, 어떤 걸 먹고 어떤 걸 삼가야 할지 막막하다. 식탁 안전 지키기도 만만찮은 세상이다.

이정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