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심서」(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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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곱살때 이미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니 멀고 가까운 거리가 같지 않음이로다」라는 시를 썼다는 다산의 『목민심서』는 지금 읽어도 감명을 준다.
22세에 초시에 합격하고 23세때는 정조 앞에서 중용에 대한 강론을 함으로써 벼슬길에 오른 다산의 공직생활은 그러나 평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29세때와 40세때 두차례의 유배생활을 한다. 첫번째는 서학을 신봉한다는 죄목이었지만 정조의 배려로 곧 풀려났고 두번째는 신유사옥에 연루된 것인데 무려 18년동안의 유배였다.
그 유배지에서 쓴 『목민심서』의 서문에서 그는 『백성을 다스린다는 것은 백성을 기르는 것(목민)이다. 그런데 지금의 목민관들은 오직 사리를 취하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기를 줄 모른다』고 개탄했다.
그는 또 『이 책이름을 목민심서라고 했는데 「심서」란 무슨 뜻인가. 목민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으나 몸소 실행할 수는 없다. 그런 까닭에 이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다』고 해설도 곁들였다.
이상을 지향하면서도 현실을 도외시하지 않은 다산의 『목민심서』는 스스로의 경험과 탁월한 통찰로 이뤄진 사도의 집대성으로 오늘날 공직자들이 봐도 조금도 퇴색되지 않은 지혜를 담고 있다.
어제날짜 중앙일보를 보면 정부와 민자당은 3당통합으로 집권기반이 확고해짐에 따라 공직사회는 물론 사회 각계 지도층 내부의 부조리를 척결하는 대대적인 「새 정신운동」을 펼친다고 한다.
다산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한 사회의 기강이 무너지는 것은 국민들의 해이된 정신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공직에 몸담고 있거나 사회의 지도급 인사등 수범을 보여야 할 사람들이 그 수범을 보이지 않고 개인의 영달이나 사욕을 앞세우는 데서 비롯된다.
그런데 이번의 「정신운동」은 3당통합에 따른 거대여당의 출범과 함께 그동안 「목민」의 기회를 바라던 많은 야당인사들의 참여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마음은 있어도 사회에 봉사할 수 없었던 다산의 「심서」 정신을 그들은 이번 기회에 한번 마음껏 펼쳐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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