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한의 문 두드리는 강대국(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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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모스크바 공동성명에 담긴 메시지
1년전만 해도 요원한 가능성의 세계에 머물러 있던 독일통일문제가 최근 콜 서독총리의 방소로 구체적 전망을 열어주고 있는 가운데 강대국의 관심은 이제 한반도 분단문제에 쏠리기 시작했다.
모스크바에서 발표된 미소 외상회담의 공동성명속에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남북한간의 대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구절이 삽입된 것은 그런 배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반도에 관해 미소가 공개적으로 한목소리를 낸 것은 처음있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공동성명 속에 든 이 한구절을 의례적인 외교적 수사로만 보지 않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셰바르드나제 소 외무장관이 공동성명후에 밝힌 입장은 북한의 김일성이 신년사에서 한 말을 추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한민족을 갈라놓고 있는 장벽」은 김일성이 말한 「남쪽의 콘크리트장벽」을 지칭한 것일 수도 있고,이를 허물어 양쪽 국민들의 자유왕래를 보장해야 한다는 구절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아마 평양쪽에서는 그런 해석을 선호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셰바르드나제가 남북한 어느 한쪽을 지칭하지도 않았고 「국제사회」에 대해 장벽의 제거를 호소한 것은 그가 남북을 갈라놓고 있는 분단이라는 상징적 장벽을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풍긴다.
이런 자구해석의 좁은 틀에서 벗어나 소련이 추구해 온 전반적인 외교정책의 기조를 놓고 보면 소련측 의도는 더 뚜렷해진다. 소련은 지금 성패의 갈림길에 와있는 페레스트로이카를 성공시키기 위해 소련 판도의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분쟁요소를 해소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왔다.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의 일방 철군을 시작으로 동구권의 독자노선과 탈공산개혁의 지원,베를린장벽의 제거와 독일통일에 대한 묵인 내지 성원은 모두 그런 기조에서 나온 것이다.
동시에 소련으로서는 대서방 개방ㆍ교류정책의 일환으로 한국과의 교류확대를 적극 추진해야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이에 극력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필요에도 불구하고 영사관 설치와 같은 공식기구의 교환설치에까지 표리부동의 입장을 취해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련은 남북한간의 긴장완화와 교류를 바라고 있으며 비공식적으로는 남북한에 대한 주변국가들의 교차승인 방식까지 응원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때 이번 미소 외상회담의 결과는 소련이 과거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자세로 북한에 대해 대남 관계개선을 촉구하려는 입장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국제적 분위기가 한반도 문제에 도움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폐쇄된 북한체제가 개혁돼야 하고 사회가 개방돼야 하며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일당독재그룹의 목소리가 아닌 저변에 깔린 북한주민들의 다른 목소리가 반영되는 상황이 돼야만 진정한 통일작업이 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지금 온세계는 그야말로 지각변동의 대변혁을 하고 있다.
북한은 더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폐쇄사회를 열어제치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 민족숙원의 통일문제를 진지하게 함께 논의할 것을 거듭 촉구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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