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린 돈의 향방이 걱정이다/생산보다 투기로 쏠리는것 막아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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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요즘 우리 경제가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도대체 경제정책이라는 것이 있는지,없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물가가 연율 12%의 속도로 뛰고 부동산투기가 다시 고개를 들어 아파트값이 춤을 추기 시작했는가 하면 수출경기는 더욱 위축,1월 한달동안 통관기준 무역수지 적자가 6억달러를 훨씬 넘어섰다.
전에는 우리경제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 노사분규 때문인 것 처럼 떠들었으나 최근에는 그 분규마저 진정국면을 보이고 있으니 정책당국자들은 이같은 난맥상의 경제에 대해 무엇이라고 그 이유를 댈지 궁금하다.
그중에도 가장 걱정스러운 일이 통화증발이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1월중의 통화공급규모는 2조6천억원으로 정부가 1ㆍ4분기 3개월동안에 공급할 예정이던 규모를 이미 넘어섰으며 이 때문에 1월중의 총통화증가율은 평잔기준으로 22.4%에 달해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87년 12월 이래 25개월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한다.
뿐만 아니라 이같은 통화 증발은 이미 지난 12월부터 계속된 것으로 12월과 1월 두달 동안에 풀린 돈만 5조6천억원이 넘는다는 얘기다.
돈이라는 것은 필요에 따라 많이 공급될 수도 있고 적게 공급될 수도 있다.
그 시기와 규모를 탄력성있게 결정,운용하는 것이 통화정책의 요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통화량이 다소 늘거나 줄었다고 그때 그때 일일이 문제삼는 일이 바람직스럽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더욱이 정부는 올해부터 통화관리방식을 바꾸어 월별 통화증가율을 연간목표 수준으로 유지하는 대신 분기별로 통화공급 규모를 정해 적정 배분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한다. 그리고 그같은 새 방식대로라면 1월중의 통화증발은 결코 걱정 할 수준이 아니며 3월말까지 적정수준으로 조정되리라는 게 통화관리책임을 맡은 재무부의 설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묻고 싶은 것은 지난 2개월동안 한꺼번에 풀어놓은 돈이 모두 침체국면을 맞고 있는 우리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한 산업생산이나 설비자금 등으로 공급된 것이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듣기로는 통화증발의 주범은 증권시장의 주가를 끌어 올리기 위한 증시부양자금이 주이며 산업계는 오히려 돈풍년속에 자금 경색을 겪고 있다 한다.
투자신탁회사나 단자회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단기자금의 금리가 하향추세를 보이는 반면 시설자금이 주축을 이루는 장기자금의 금리가 14∼15%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이같은 자금흐름의 왜곡현상을 반증한다 할 수 있다.
더욱이 정부의 증시부양책이라는 것도 합당주가다. 창당주가다 하는 설이 암시하고 있듯이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3당합당이란 행사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이루어졌다는 추측이 시중에 널리 유포되고 있다.
이같은 추측의 사실여부는 알 수 없다 해도 공교롭게도 정치권의 행사에 맞추어 주식시세를 끌어 올리기 위한 자금공급이 이루어졌다면 통화당국으로서도 변명이 궁색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통화의 일시적 급증추세와 함께 정치권의 영향이 있었든 없었든 간에 통화증발로 주가를 부추기겠다는 발상자체에 있다.
주가가 오를 객관적 요인이 없는데 주가를 받치기 위한 자금을 푸는 경우 그 돈은 결국 일부 투자자들의 시세차익으로 돌아가고 그렇게 생긴 돈은 다른 투기대상을 찾아 부동산으로 흐르거나 대기자금으로 남아 물가불안을 야기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정부의 통화정책은 생산ㆍ시설자금을 지원,경기를 부추기는 데보다는 투기를 조장하는데 중점이 가 있으며 이 때문에 부동산투기의 재연과 물가불안을 야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 경제팀은 걸핏하면 원론적 처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이같은 통화정책도 과연 원론적 처방에 속할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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