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진홍의소프트파워

대통령은 보람 ? 국민은 죽을 맛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세간에 떠도는 우화로 '소 이야기'가 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누가 소를 가져오니 그 즉시 농민들에게 보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소를 잡아 잔치를 벌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소를 자기 집 외양간에 묶어놓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소를 아들 현철씨에게 주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소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소를 어찌할 바 몰라 앞뜰과 뒤뜰로 끌고만 다닌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노 대통령의 무능과 무대책을 꼬집은 이야기다.

실제로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5.4%가 "노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 여론조사 사상 최악의 결과다. '파격과 괴짜'라는 점에서 노 대통령과 닮았다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집권 5년간 평균 지지율이 50%인 점과도 뚜렷하게 비교된다. 두 사람의 성격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국정운영 성적만은 판이하다.

그런가 하면 한국 경제는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2004년에 인도에 10위 자리를 내주더니 올해는 브라질에 다시 11위마저 내줬다. 노 대통령 재임기간 중 두 계단을 내려앉은 것이다. 반면에 좌파 출신으로 노 대통령과 비슷한 시기에 취임했던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예상과 달리 기업인들을 경제 관료로 발탁하고 정부지출을 과감히 줄이면서 조세감면정책을 추구한 실용주의 노선 덕분에 재임 중 경제규모 순위를 네 계단이나 끌어올렸다. 두 사람의 색깔은 동색인지 모르겠지만 성적표는 때깔이 다르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3년반이 됐는데 세상이 시끄러웠다는 기억만 남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 분명한 세간의 기억은 그 소란의 중심에 항상 노 대통령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중국의 반관영 통신인 '중궈신원'의 자매지 '중궈신원저우칸(中國新聞週刊)' 최근 호에서 "노 대통령의 개혁은 '분열정책의 대명사'가 됐다"고 지적했으랴.

이런 와중에 노 대통령은 지난 3년반이 "힘들지만 보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도대체 대통령은 어디서 무슨 보람을 찾았는지 모르지만 정작 국민은 죽을 맛이었다. 엊그제 노 대통령은 방송회견을 통해 "경제와 민생은 분리해서 봐야 하며 경제가 좋아도 민생은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민생고에 빠진 국민을 위로하기는커녕 교묘히 자기변명하기에 바쁜 대통령의 궤변이다. 그의 궤변에는 항상 편 가르기와 책임전가가 숨어있는데 이젠 엉뚱하게 경제와 민생마저 편을 가르고 있다.

노 대통령은 '바다이야기'가 고개를 들 때 이미 다 파악한 듯이 "아무리 털어도 나올 것이 없고 오히려 친인척 관리의 모델 케이스로 부각될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도둑 맞으려니 개도 안 짖더라"며 은근 슬쩍 책임을 아래로 떠넘겼다. 그러나 개는 짖었는데 주인이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든지, 아예 주인이 도둑이다 보니 개가 짖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더 실감나게 들린다.

이런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은 '비전 2030'을 내놓았다. 이대로라면 2030년 이후에 우리는 교육.주거.의료.육아.노후 걱정을 안 해도 된다. 물론 여기엔 1100조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세금 내기 싫어서가 아니라 과연 노무현 정부가 이런 청사진을 내걸고 꾸려갈 권한과 능력이 있는가를 근원적으로 회의하고 있다. 오죽하면 여당 의원 입에서 "미래의 암 걱정보다 당장 목의 가시가 급하다"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노 대통령의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남은 시간이나마 자신의 보람보다 국민의 살맛을 위해, 궤변 대신 진중한 행동으로, 생각과 자세를 고쳐 몸 바치며 일하길 간절히 소망한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