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하기에 달렸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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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자당 출범을 보는 우리의 시각
9일로 정계에서 민정ㆍ민주ㆍ공화당이란 세개의 정당은 사라지고 민주자유당이란 거대한 새 여당이 공식으로 등장했다. 여야 3당이 통합해 하나의 여당이 된 이 헌정사상 처음 보는 정계의 변화가 우리 정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관심을 갖고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이 시점에서 민자당의 등장으로 우리 정치가 전보다 더 나아질지 여부에 관해 많은 국민들이 확신을 갖지 못한다고 본다. 종전의 4당구조에서 겪은 만성적 정국표류에서는 벗어날 것이란 안도와 기대가 있는 반면 새 거대여당이 어떤 노선과 성격에서 어떤 정책을 추구할 것이며,새로운 여야관계가 어떻게 정립될 것인지,3당통합으로 나온 민자당 자체의 운영과 새로운 당정관계는 과연 원만하게 이뤄질 것인지,이런 각종 의문점에 대해 아직은 누구도 확신하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민자당의 장래는 이제부터 하기에 달렸다고 할 수밖에 없으며,국정을 주도하는 막중한 거대여당으로서 자기들에 쏠린 의문과 우려를 하루빨리 씻기 위해서도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정책제시와 구체적 실천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우리는 민자당의 성패가 바로 국정과 나라 진운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민자당의 진로에 관해 나름대로 몇가지 당부를 하고자 한다.
먼저 민자당은 당의 노선과 성격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중도ㆍ민주를 표방한 민자당의 정강정책을 보면 국민이 바라는 좋은 정책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했다는 인상을 줄뿐 거기서 당의 노선이나 성격이 분명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민주화 개혁의 추진을 내세우고 있지만 벌써 보수연합에 의한 힘을 바탕으로 각종 개혁이 후퇴하는 듯한 조짐이 보이고 있다.
민자당은 당의 성격에 관한 이같은 의혹과 불안을 명백한 실천으로 씻는 노력을 신속히 할 필요가 있다.
둘째,새 여야관계의 정립에 있어 민자당은 과거의 「대여」가 범한 과오를 되출이해선 안될 것이다. 3분의2가 넘는 거대의석으로 과거처럼 독주,밀어붙이기로 나간다면 4당구조보다 더한 정국불안이 오기 쉽다. 소수의견의 존중과 4당시절 강조했던 대화와 타협이 더욱 절실하다.
그리고 보수연합인 민자당으로서는 소외ㆍ불만계층의 소리를 대변할 진보세력의 제도권 진입을 위한 각종 여건의 조성과 제도적 장치의 마련도 더이상 외면 못할 요청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셋째,신여권 내부의 질서문제다. 신당의 운영이 불가불 파벌정치가 될 것이란 점에서 많은 국민이 국정의 나눠먹기식 운영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파벌정치를 하더라도 그들의 통합이 단순히 권력의 확보와 그 분점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국정운영은 반드시 요구되는 기준과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
전문성과 현실적 타당성 없이 모든 요직을 3파 안배로 기용하고 각종 정책도 3파 타협적으로 결정하는 현상이 와서는 안된다.
요컨대 민자당은 거대의석만큼 광범한 국민지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나라 안팎에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냉철히 헤아려 그 요구에 스스로를 맞춰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민자당으로서는 고통스런 일도 많고 전도에 시련과 도전도 많을 것이다.
우리는 민자당이 스스로 말하는 신사고에 의해 이런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그리하여 스스로 표방하는 성숙한 정치문화를 만들어 내기를 충심으로 바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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