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벗은 국민 |「버마식 사회주의」20년에 가난만 남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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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버마(미얀마)의 작은 밍가라돈공항은 말만 국제공항이다. 까다로운 입국수속후 짐을 실으면서 놀라움은 시작됐다. 아이들이 입에 피처럼 빨간 것을 물고 우리의 가슴에 꽃을 달라고 외친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들은 붉은 열매를 껌같이 씹고 다녔다.
동행한 의사친구가 이곳에는 무서운 법이 많다고 주의를 줘 더욱 긴장되었다. 길에는 트럭에 사람들이 꽉차게 매달려가는 모습이 TV에서나 보던 혁명뉴스와 같았지만, 사실은 그곳 사람들의 버스였다. 7년전 우리의 인재들을 삼켜버린 아웅산이 있는 나라이기에 어쩐지나의 불안한 신경은 좀처럼 풀어질 것 같지 않았다.
새벽4시에 북쪽 파강을 향해 차로 떠났다. 천년이나 된듯한 가로수와 폐허화해 산재한 무수한 파고다, 그리고 사탕수수와 도티라는 술나무가 펼쳐진 광야를 12시간 달려 파강을 맞았다.
다음날 마차를 타고 흙길을 달려 수없이 다가오는 황량한 유적군의 들판에서 모든 걱정은 풀리기 시작했다.
몇천년전의 흥망을 피부로 접하니 놀라웠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동남아시아에서 제일 부강하던 버마가 20년의 사회주의체제로 제일 못살고 발전되지 못한 나라중의 하나로 돼버렸다. 아직은 모든 것이 나라의 소유이고 개인의 것이 없기 때문에 놀면서 굶고 산다. 맨발로 그들과 함께 먹고 걷다보니 그곳에서 그나라 사람들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애쓰는 우리 대사부인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근본적으로 무엇이 문제인가를 나는 알았다. 이나라의 실권자 네윈의 20년동안 폐쇄된 사회주의 정치가 문제였다. 한예로 몇년전 미얀마정부는 농민들이 부자들에게 농토를 다 팔게 하고는 하루아침에 화폐개혁과 토지개혁을 해서 돈을 종이로 만들고 토지도 빼앗아갔다. 땅을 산자와 판자가 동시에 거지가 됐다. 자원이 풍부한 버마지만 국민들은 배고프다. 우리는6·25전쟁후 정치면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그런대로 청산과 시작을 거듭하면서 계속 발전해왔다. 다같이 못살기에 성공한 미얀마를 보면서 새삼 우리의 체제가 고맙게 생각됐다. 다같이 잘사는 우리나라를 만들기 위해, 온국민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 평화를 만들기 위해, 개인 스스로 판단하고 믿고 나갈수 있는 정치사회로 이끄는데 적극 참여해야겠다.
버마에서 6·25전쟁 직후의 우리과거를 되돌아본 나는 놀라움에 사로잡혀 현재를 응시해 본다. 그리고 우리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진실로 참된 정치가 되기를 기원한다. 홍정희<서 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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