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내한 리메이크 '에비타' 런던에서 먼저 보니 장면마다 탱고 선율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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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33년간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

광고에나 나올 법한, 식상한 문구일 수 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에바 페론(1919~52)에게 이보다 더 적합한 말은 없다. 뮤지컬 '에비타'는 에바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이다. 뮤지컬은 그녀의 1952년 장례식 장면을 영상 다큐멘터리로 틀어주면서 무대 안으로 들어온다.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여(Don't Cry For Me Argentina)'로 우리에게도 낯익은 '에비타'는 본래 78년 초연됐다. 전설의 이름 앤드루 로이드 웨버(작곡)와 팀 라이스(작사) 콤비에 의해서다. 이미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로 호흡을 맞추었던 둘은 이 작품을 통해 80년대 '뮤지컬 세계화'의 초석을 다진다. 런던 웨스트엔드 공연에 이어 이듬해 뉴욕으로 건너가 브로드웨이까지 강타한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런던과 뉴욕 '동시 공략'은 이전까진 볼 수 없던 전략이다. 티켓 최다 사전 판매 등 각종 기록도 몽땅 갈아치웠다.

올 6월부터 재개된 런던 공연은 과거에 비해 라틴풍이 강하다. 이를 매개하는 것은 아르헨티나 탱고. 에바가 자랐던 시골에서도 성공을 위해 올라온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도 끈적끈적한 탱고는 빠지지 않는다. 심지어 후안 페론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정적을 물리치는 장면에서도 탱고는 상징적으로 사용된다. 연출자 마이클 그란다지는 영.미권의 시각을 넘어 남미 특유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는 아르헨티나 출신 엘레나 로저를 주연으로 기용한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작품엔 아르헨티나 출신 혁명가 체 게바라가 나온다. 때론 관찰자로 혹은 출연자로,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작품 전체를 이끈다. 실제 역사에서 둘이 만났다는 증거는 없다. 페론 정권에 반대했던 체 게바라를 등장시킴으로써 극은 묘한 긴장감을 갖게 된다.무엇보다 이 작품의 강점은 에바의 삶 자체다. 1막에선'팜므파탈'이다. 화려한 외모로 남자를 유혹하다 용도가 다 되면 가차없이 폐기처분하는, 성공을 향해 치닫는 여성이다. 2막에선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면서도 가난한 이들의 편이 되곤 했던 에바의 이중적 내면이 탄탄히 그려진다. 다만 단순 나열식으로 에바의 삶을 펼쳐놓은 점은 다소 아쉬운 부분.

국내엔 라이선스 공연으로 11월 서울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김선영.배해선(에바), 남경주(체 게바라), 송영창(후안 페론) 등이 출연한다.

런던=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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