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민당 “아 옛날이여”/박보균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24일 한파속에서 사당동 시장바닥을 누볐다.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 등한시 되어온 민생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김총재의 손을 잡은 한 상인은 『여당을 해야할텐데…』 『힘내세요』라고 안스러워 했다.
김총재가 이러고 있는 동안 여의도 평민당사에는 민정­민주­공화의 합당을 「쿠데타적 야합」이라고 규탄하는 당원들의 단합대회가 계속되고 지지자들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었다.
졸지에 제1야당에서 소수야당으로 밀린데 대한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지모라면 단연 당대 제일이라고 자부하던 김총재가 어떻게 해서 그같이 기습을 당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 등등….
대부분의 소속의원과 당원들은 바로 얼마전 『정치실세는 우리와 노정권이다』 『지자제에서 민정당과 연합공천도 고려하겠다』고 하던 김총재의 호언이 귓전에 맴돌고 있는듯 하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여권의 양동작전에 놀아난 것인가,저쪽의 이중플레이를 눈치채지 못했는가.
평민당은 5공청산 이후의 정국은 적어도 「김대중과 함께하는 정치」 「호남을 안은 정치」가 될 것으로 낙관했다. 자만에 가까운 확신이었다.
노대통령과 여권의 반평민당 세력을 분리하는 김총재의 전략은 주효하다고 믿었다. 중간평가 연기ㆍ5공청산 등이 모두 김총재 얘기대로 되었다고 평가했다.
김총재는 『노대통령과 휘하의 인물쯤이야…』하는 자부심을 가졌는지 모른다.
그순간 상대편은 평민당이 주장하는 「제2유신적 야합」을 급속히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11일 청와대 회담에서 김총재는 노대통령의 연정제의를 선뜻 응낙하지 않았다.
노대통령으로선 평민당을 제치지 않았다는 정치적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사전포석이었는지도 모르는데….
이제사 평민당내에는 정부부재와 상황판단 미스에 대한 자성과 비판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의원총회에서는 당직자들의 인책사퇴론도 나왔다.
통합의 격류속에서 평민당은 강경투쟁을 외칠뿐 엉거주춤하고 있다. 많은 의원들은 당리만 생각하고 4당체제에 안주하겠다는 평민당의 안이한 발상이 오늘 그들을 엄동의 거리로 내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한을 곱씹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