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미 유학 "눈높이 조금만 낮춰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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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하다 보면 꿈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많다.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꿈은 있는지 등을 물어본다. 이때 학생들의 3분의 1 정도는 의사, 판사, 국제 변호사, 유전공학자 등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말한다. 이런 경우 그 일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느냐고 되물으면 대부분 말문이 막힌다.

다른 3분의 1 정도의 학생은 뜻밖의 직업을 댄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악기 제작자, 수영복 디자이너 등이다. 무척 구체적이고 창의적이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인지 아느냐고 물으면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한다. 자신의 재능과 흥미를 일찌감치 발견한 이들은 정말 행운이 아닐까 싶다. 나머지 학생은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하며 쑥스러워 한다. 이들이 게으르고 무책임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아직까지 자신의 재능과 흥미를 발견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더욱 정확히 말하면 학교와 학원 공부를 따라가느라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라 말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유학을 준비할 때 이런 경우 가장 어려울 수 있다. 어느 하나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는, 말 그대로 평범한 학생일때 학교에 어필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 공부는 못해도 랩을 잘한다든지, 자신만의 그림 스타일이 있다든지, 음악적 감각이 있어 작곡이나 연주에 실력이 있는 경우는 비교적 받아들여지기가 쉽다. 그런데 유학을 준비하려는 대부분 우리나라 중고생들을 대할 때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서로 너무 비슷비슷하다는 점이다. 특별히 적성과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데다 특기나 흥미도 없다. 그저 중간 정도의 학교 성적에 남들 다 하는 초보 수준의 피아노를 취미로 꼽고, 할 줄 아는 스포츠라고는 물에 빠지지 않을 정도의 수영이라는 사실이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정현이도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저 평범한 중학교 3학년으로 특별히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며, 리더십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반장 한번 해본 적이 없었다. 이러한 정현이가 유학을 결정한 것은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라고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에서 좋은 대학 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부모의 판단 이후 첫 상담에서 꿈이 뭐냐고 물었다. 정현이는 가만히 고개를 떨구고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가만히 정현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마음이 아팠다. "저도 제가 무엇을 잘하는지 깨닫고 미래에 대한 꿈도 꿔보고 싶어요. 그래서 유학을 가고 싶어요." 유학을 위한 영어 공부를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정현이에게 남은 시간은 단 3개월 뿐이었다. TOEFL과 SSAT 성적이 모두 필요했다. 언어에 비해 수학적인 재능이 더 컸던 정현이는 SSAT Math Section과 Verbal의 Analogies (유사 관계 찾기 문제)를 공략하여 3개월의 공부로 TOEFL 247, SSAT 77%의 성적을 올렸다. 정현이는 30위권의 여학교를 선택했다. 특이한 결정이었다.

모두가 세계 최고 수준의 명문고를 가고 싶어하는데 처음부터 목표도 낮게 정하고, 게다가 미국에서까지 여학교에 다니겠다니 다른 친구들은 정현이의 결정을 궁금해 했다.

정현이는 대학을 준비하는 과정인 동시에 미래의 직업에 대한 자신의 재능을 시험해 보고 싶어 그 학교를 선택했다고 했다. 캠퍼스 투어를 다녀온 뒤 그곳에 마음이 맞는 한국 선배들이 있었고, 그 선배들이 다른 나라 학생들과도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 좋아 보였다고 했다. 어린 딸의 유학에 내심 불안해 하시고 있는 부모를 위해 비교적 안심시켜 드릴 만한 환경의 여학교를 골랐다는 것이다. 현명한 결정이었다.

<필자> 한세희(카플란센터 코리아 SSAT 전임강사/ '미국 사립고등학교 가려면 꼭 알아야 할 Vocabulary'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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