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 무력사용 “큰 실수”/불씨안은 아제르바이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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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오히려 반소감정만 자극시켜 더 악화/최고회의 의장 “명백한 주권침해” …소연방 탈퇴 별러
【월스트리트저널=본사 특약】 소련은 지난주말 아르메니아인 학살과 독립요구로 무정부 상태에 빠진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시에 군병력을 투입,진압에 나섰다.
그러나 아제르바이잔 주민들이 무력진압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섬에 따라 고르바초프가 대공화국 정치에서 상실한 지도력을 회복하는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돼 사실상 아제르바이잔 사태는 시작에 불과하다.
소련군의 무력진압은 아제르바이잔인들의 반소감정을 더욱 자극하기만 했다.
고르바초프가 이 사태를 빠른 시간내에 진정시키지 못할 경우 발트해 3국의 평화적인 시위까지 포함,소련내 모든 민족 문제를 강제 진압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당내 보수파의 반격으로 수세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
리투아니아의 주젤리우나스등 급진 개혁주의자들은 『소련공산당이 1년전 정치적 해결이 필요했을때는 수수방관하다가 뒤늦게 무력진압에 나서 오히려 사태수습과 민주적 개혁을 어렵게 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소련군의 바쿠시 진입직후 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서기장 베지로프를 전격 해임하고 이 공화국 공산당지도자들과 만나 사태수습 방안을 논의하는 등 신속한 행동을 취했다.
그러나 아제르바이잔의 민족문제와 정치위기는 이미 연방정부가 통제력을 상실한 최악의 상태이며 공화국 정부의 지도층까지 연방정부에 공공연히 반기를 들고 있어 고르바초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아제르바이잔 공산당은 공화국내 회교민족주의단체인 「인민전선」의 대규모 군중시위에 힘입어 중앙당의 경고를 무시한채 계속 독립노선을 추구해왔다.
소련군의 무력진입후 주모스크바 아제르바이잔 대표부는 이를 「야만적」이라고 비난하며 『신사고가 붉은 이빨을 드러냈다. 인민은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란 내용의 전문을 크렘린에 보냈다.
아제르바이잔 최고회의 의장 카마로바도 중앙당의 바쿠시 비상사태 선포에 항의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명백한 주권침해』라며 연방으로부터의 탈퇴를 선언했으며 인민전선 행동주의자들은 총파업과 대규모 군중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고르바초프가 무력을 사용하게된 근본 이유는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호전적 민족주의자들의 과격행동을 묵인하고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국 정부는 행동주의자들이 군대에서 무기를 탈취,인근 아르메니아 공화국과 전투를 벌이고 이란과의 국경선을 무너뜨리는데도 이를 저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바쿠시에 통행금지를 실시하라는 크렘린의 요구도 수차례나 묵살했었다.
고르바초프가 우려하는 것은 아르메니아인 학살보다는 무정부 상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인민전선」은 고르바초프의 민주화ㆍ개혁조치에 영향받은 아제르바이잔 지식인들이 주축이돼 지난해 7월 시민들과 함께 구성한 단체로 페레스트로이카 도입을 적극 지지해왔다.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지도자들도 인민전선의 요구를 대폭 수용,지난해 9월엔 공화국 의회가 중앙당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선언하는 법안을 제정하기도 했다.
최근엔 아르메니아와의 분쟁이 가열됨에 따라 인민전선 행동주의자들의 세력이 더욱 강화돼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카스피해 부근 인구 5만명의 렌코란시에서 인민전선이 공산당기관 사무실ㆍ군시설등을 점령하는데 불과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나히체반자치공화국도 20일 소련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고르바초프를 더욱 곤경에 몰아넣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군사력 없이 사태를 진정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며 실제로 아제르바이잔 사태를 무력진압,어느정도 효과를 보았다.
그러나 소련의 무력사용에는 국내외적인 한계가 있다.
일본을 방문중인 소련의 개혁주의자 보리스 옐친은 『민족문제를 무력진압한 것은 큰 실수로 이로인해 고르바초프가 실각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소련군도 9년간의 아프가니스탄 전투로 지치고 사기가 저하돼 있으며 예비군 동원도 자식ㆍ남편을 잃을 것을 걱정하는 여성들의 반발에 부딪쳐 취소됐다.
국제적으로도 미국ㆍ유럽등은 소련의 무력사용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아제르바이잔과 같은 회교국가인 이란은 『무력행위를 즉각 중지할것』을 요구하는등 강력히 항의,이번 사태로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피터 검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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