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디자인하우스 이영혜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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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30주년 기념사업으로 짓고 있는 ‘페이퍼테이너’ 뮤지엄 공사현장.

"복덕방 주인." 9월 3일 창립 30주년을 맞는 디자인하우스 이영혜(53) 사장은 자신을 이렇게 불렀다. 1977년 월간 '디자인'에 몸담은 뒤 줄곧 "디자인이 먹고살 길"이라고 부르짖고 다녔다. 디자인에 목말라 있는 기업인들에게 디자이너들을 소개해줬고, '서울리빙디자인페어' 등 박람회를 열어 이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그래서 지난 30년 삶이 복덕방 주인과 닮았다는 것이다. "제가 '우물 사주'를 타고났대요." 늘 그의 주변은 동네 아낙네들이 모이는 '우물'처럼 이런저런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디자인하우스는 1976년 서울 장충동의 조그만 사무실에서 닻을 올렸다. 30년이 지난 지금 8개의 잡지를 거느리는 연매출 250억원의 중견 출판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영혜 사장은 홍익대학교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한 후 한 의류 수출업체의 보조 디자이너로 들어갔다. 바이어가 주문한 옷의 단을 늘리고 단추의 위치를 바꾸는 일이 고작이었다고 한다.

그는 "디자인 선진국에서는 어떤 디자인을 배우고 가르치는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고 당시의 '디자인 갈증'을 떠 올렸다. 때 마침 국내 최초의 디자인 전문지 월간 '디자인'이 창간됐다. 77년 편집부 기자로 입사했고 80년 적자에 허덕이던 그 잡지를 넘겨 받았다. '디자인'을 지키기 위해 달력.명함.브로셔 제작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80년 10월 언론통폐합은 잡지도 비켜가지 않았다. 월간 '디자인'도 된서리를 맞았다. 1년에 10권 이상 못 내는 월간지는 폐간한다는 잣대에 걸렸다. 그는 '디자인'을 되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호소하는 편지를 대통령에게 썼다. "정부가 하는 일"이라며 만류하던 한 선배에게 그는 "정부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폐간 4개월 만에 월간 '디자인'은 부활했다. 29년간 적자만 보던 '디자인'은 지난해 흑자로 돌아섰다.

1987년 9월 신개념 여성지 '행복이 가득한 집(사진)' 창간은 그가 잡지 편집자에서 기업인으로 거듭나게 한 발판이 됐다. '여성=디자인 소비자'라는 점에 주목해 만든 이 잡지는 창간 8개월 만에 흑자궤도에 올랐다. "늘 돈보다 열정을 앞세워 달려왔는데 그제야 시장이 무엇이라는 느낌이 오더군요." 그가 늦깎이 경영학도가 된 것도 이때쯤이었다.

"눈 깜짝할 새 돌아오는 직원들 월급날이 두려웠다"던 이 사장에게 돈 걱정을 덜어 준 것도 '행복이 가득한 집'이었다. 2000년 유럽의 다국적 미디어 그룹 BRIH(Burda Rizzoli International Holding)는 디자인하우스에 1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그는 최근 '디자인 복덕방'의 무대를 온라인으로 넓히고 있다. 지난 5월 각 분야를 대표하는 디자인 회사 60개와 디자이너 64명을 모아 온라인 디자인 커뮤니티 DDB(Design & Designer Business)를 열었다. 디자이너들 간의 소통의 벽을 허물고, 기업인들이 손쉽게 톱 디자이너들과 접촉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는 사원들이 음악.스포츠.영화 등 분야에 제한 없이 자신들의 관심사를 발표하는 월례회의를 세상에 던질 의미를 찾는 실험장을 활용하기도 한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넘나드는 '1류 미디어 콘텐트 그룹'으로의 도약하겠다"는 것이 디자인하우스 창립30주년을 맞아 이 사장이 직원들에게 던진 포부다.

9월 15일부터 개최되는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은 재도약의 첫 단추다.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시게루 반과 손잡고 서울 올림픽공원 내 1000여 평의 부지에 종이 기둥과 컨테이너로 대형 미술관을 지었다. 낸시 랭 등 30인의 예술가와 김현.손혜원 등 톱 디자이너 30명이 이 곳에 모인다.

임장혁 기자

▶디자인하우스는

-설립일:1976년 9월3일

-매출액:250억 (2005년 기준)

-직원수:210명

-주요사업:'디자인''행복이 가득한 집''맨즈헬스' 등 8개 월간지, 단행본 출판, 온라인 쇼핑몰(DDH 스토리샵), '서울리빙디자인페어' 등 3개 전시회 및 문화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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