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송두율의 준비 안된 歸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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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자칭 '경계인' 송두율.

그는 '두 세계를 소통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경계인(border rider)이라는 말을 쓴다고 했다.'경계의 어느 한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외로운 존재'라고도 했다.

모르겠다. 오랜 이방(異邦)생활 동안 그가 정말 경계선에 서 있었는지, 외로웠는지, 남과 북을 소통하려는 고민을 했는지. 그건 그의 양심만이 알 일이다.

지금의 그는 35년 만에 찾아온 모국에서 감옥에 가느냐 마느냐의 경계에 서 있다.

그가 느닷없이 독일에서 들어온 지 근 한달간 언론이 시끄러운 건 그가 스타라서가 아니다. 그의 처리를 놓고 우리가 앓는 시대적 혼란 때문이다.

우리의 이념 좌표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는 희생자인가 도망자인가. '전향'이란 무슨 의미인가. 그를 감싸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학자의 양심'이란 뭔가. 이런 등등이 결론나지 않아서다.

국정원이, 그리고 검찰이 꽤 조사를 했지만 아직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많은 사건이 터진 2003년이지만 '송두율 리포트'는 그래서 올해의 10대 뉴스에 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 고민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 건 14일 그의 '대국민 회견'을 보고나서다. 그는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헌법을 지키며 살겠다" "어떤 불편과 처벌과 고통도 감내하겠다"면서도 "균형감 있는 경계인으로 살겠다"는 어색한 말을 또 집어넣었다. 알량한 그 한 마디 때문에 회견은 안하니만 못한 모순된 자리가 됐다. 그런데도 "반성으로 봐달라"고 한다.

막상 까보니 송두율은 이인모도, 김현희도, 황장엽도 아니었다. 이인모는 절개의 전사(戰士)였다. 한국전쟁 때 인민군으로 쳐들어왔다가 붙잡혀 34년간 옥살이를 하면서도 끝내 사상 전향을 하지 않았다. 그는 76세 노인이 된 1993년 우리 정부의 배려로 북의 고향에 돌아갔다.

황장엽은 주체사상의 골격을 짠 진짜 골수다. 97년 어느 날 그는 "인민이 굶어죽는데 무슨 사회주의냐"면서 스스로를 청산하고 남한으로 걸어왔다. 대한항공기 폭파범 김현희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90년 특별사면됐다. 뉘우치고 자백했고 진심으로 속죄했다는 이유였다.

송두율에게선 그런 지조도 뉘우침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여러 가지를 조롱한 느낌이다.

노동당원이 아니라고 잡아떼다 수사기관에 들어가면 조금씩 말을 바꿨다. 현재는 "노동당 후보위원급 대우를 받았다"까지 진도가 나가 있다. 무조건 부인하다 증거를 대면 고만큼만 자백을 하는 잡범들과 다를 바 없는 태도다.

"무엇을 사죄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더니 요즘은 불쑥불쑥 애걸하는 행동을 한다. 대충 넘어가려다 안 통한다 싶으면 표정을 바꾸는 모습이다.

그러니 "저 자가 뭘 믿고 저러나"하는 소리가 나오고, 그런 의심이 그의 입국을 둘러싼 '내막론'으로 발전한다.

그는 이제 국제 미아(迷兒) 신세다. 독일국적 포기를 선언했고 노동당도 탈당하겠다고 했다. 북한은 그가 남행(南行)한 순간부터 거들떠보지 않고 있다. 그가 추방된다면 어떤 변을 당할지 모른다. 그러니 이 땅은 앞으로 그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발가벗고 진솔하게 용서를 구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꾸밈은 받아주지 않는다. 그것을 그는 정말 깨닫지 못하고 있는 걸까.

준비되지 않은 귀향이 그 자신과 주변을 힘들게 하고 있다.

김석현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