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때 유괴됐던 소녀 8년반 만에 극적 탈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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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반 전 유괴된 후 연기처럼 사라졌던 오스트리아 소녀가 극적으로 생환했다. 주인공은 나타샤 캄푸슈(18.사진). 1998년 3월 2일. 흰색 밴을 탄 정체불명의 남자가 당시 10세였던 캄푸슈를 등굣길에 납치했다. 오스트리아는 물론 유럽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 사건은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에도 불구하고 미제사건으로 잊혀졌다. 그동안 범인의 단서를 전혀 잡지 못했다. 경찰은 1000여 명의 용의자를 상대로 조사했고, 헬기와 잠수부를 동원해 사건 발생 지역과 호수 밑바닥을 샅샅이 뒤졌다.

또 헝가리에서 그녀를 봤다는 신고가 들어와 이웃나라까지 확인작업에 나섰지만 성과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등잔 밑이 어두웠던 것으로 밝혀졌다.

범인은 소녀의 집에서 불과 10㎞ 떨어진 곳에 살던 통신기술자 볼프강 프리클로필(44). 유괴 수사 당시 조사를 받기는 했지만 "흰색 차가 없다"는 이유로 용의선상에서 벗어났던 인물이다. 그는 캄푸슈가 탈출한 사실을 알고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경찰은 "독신으로 살던 그가 캄푸슈를 유괴한 후 성적 노리개로 삼았던 것 같다"고 범행동기를 추정했다.

캄푸슈는 그동안 범인이 차고 밑에 숨겨뒀던 은신처에서 살아왔다. 입구의 높이와 폭이 50㎝밖에 되지 않아 기어 들어가야만 하는 지하 감옥이었다. 창문이 없는 그 안은 9㎡(약 2.7평)의 공간에 TV.침대.옷장.화장실과 욕조를 갖추고 있었다. 평소 캄푸슈는 이곳에서 범인이 가져다 주는 음식을 먹으며 책이나 비디오를 보고 소일했다. 또 집안 청소 등 허드렛일을 돕기도 했다.

납치범은 캄푸슈에게 "탈출을 시도하면 정원과 집안 곳곳에 묻혀 있는 폭탄이 터진다"며 협박해 왔다. 탈출 당시 캄푸슈는 승용차 안을 청소하던 중 범인이 차고를 나간 사이 이웃 주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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