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지키는 「법정의 존엄」/신성호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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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법원이 15일 전국 법원에 시달한 법정질서 유지를 위한 강경한 지시문은 사법부독립보다 법정질서유지가 더 시급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종전에도 법정에서의 질서유지가 강조돼왔지만 이번처럼 법원 스스로가 「법치주의에 대한 정면도전」「국가의 법질서를 근본으로부터 무너뜨리는 파괴행위」라는 등의 표현은 사용치 않았었기 때문이다.
이는 곧 법정소란행위가 그만큼 위험수위에 이르렀음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으레 시국사건관련 재판이라면 법정소란→방청제한→재판거부→퇴정명령→궐석재판이 어느새 일상화돼 버렸다.
여기에 방청객들의 고함과 욕설,노래와 함께 소란행위자에 대한 감치명령도 빼놓을수 없다.
이같은 법정소란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들어 시국관련 사건 뿐 아니라 일반 형사사건이나 일부 민사사건 재판정에까지 확산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85년7월 서울미문화원 점거농성사건 재판을 계기로 본격화됐던 법정소란은 5공시절까지는 시국관련사건에 국한된 현상이었다.
물론 재판거부나 법정소란의 확산이 사법부만의 책임은 아니다. 자신들의 의사를 적법한 절차가 아닌 집단행동으로 관철시키려하는 작금의 사회풍조에도 원인이 있다.
따라서 재판부를 향해 신발ㆍ병을 집어던지는 물리적인 재판방해행위에 대해서는 사법부의 권위가 지켜져야 한다는 점에서 법원이 적절한 제재를 내려야한다.
하지만 법정소란행위의 근저에는 무엇보다 사법부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깔려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한 여대생의 애타는 성고문피해주장이나 재야인사들의 잇따른 고문폭로를 애써 외면했던 것이 바로 우리의 사법부였다.
또 1천2백여명의 대학생에 대한 구속영장을 한꺼번에 무더기로 발부해 주었던 것 역시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다.
법관서명파동등 거듭태어나기 위한 진통을 겪으며 새 사법부가 출범한 이래 그동안 많은 노력과 변화가 있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반 방청객보다 더 많은 사복경찰이 법정을 메우고 있는 현실에서 사법부가 또다시 과거 일그러졌던 모습을 재현시키고 있지나 않은지도 되돌아 보아야 한다.
사법권의 독립이나 법정의 존엄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법원 스스로 일으켜 세우고 지켜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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