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서독선 권한배분 「작은국가」구실|한국의 현실과 외국의 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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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미국은 지방정부가 매우 강력해 도대체 연방정부가 있는지 없는지 알수 없다.』
1830년 프랑스의 정치가 토크빌이 미국을 방문한 뒤 미국정치에 대한 인상을 표현한 말이다.
이 말은 지방자치란 과연 무엇이며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가장 적확한 표현으로 인용되어 오고 있다.
지방자치제가 발달한 미국은 일찍부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업무·기능에 대한 적절한 배분을 통해 지방자치실효를 거둘수 있었다.
미연방법 제10개정조항은 『지방정부가 해서는 안된다고 정한것 이외에는 모든 업무를 지방정부에 넘긴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 「정부관계 자문위원회」를 연방정부특별기구로 상설, 중앙과 지방의 적절한 기능배분을 기하고 있다.
여기에는 지방 및 중앙정부·입법부·사법부·시민대표등 24명이 참여해 영속적으로 연구·보고토록 법률로 정하고 있다.
반면 30년의 휴지기를 거쳐 이제야 지방자치 전면실시를 눈앞에 두고있는 우리의 실정은 어떠한가.
내무부산하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85년도 기준 조사결과에 따르면 직할시와 도의 경우 업무의 54·5%, 63·2%가 각각 지방자체의 고유업무가 아닌 중앙정부 위임사무로 나타났다.
이러한 비율은 하급지방기관으로 갈수록 더욱 심해져 시·군·구의 경우 중앙정부의 위임사무가 각각 57·7%, 62·3%, 75·8%로 늘어난다.
최하위 지방기관단위인 읍·면·동에 이르면 각각 79·4%, 76·5%, 77·66%로 엄청나게 커진다.
이 조사결과는 지방정부가 자신의 주된 업무, 즉 주민의 복리와 민생에 관한 업무수행은 제쳐놓고 중앙의 업무처리에만 매달려있는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방정부는 입법기능을 갖지 못해 정책결정과정에서 주민의 의견을 수렴할수 조차 없다.
비록 자문기구 형태로 시민대표 참여의 길이 열려있긴 하지만 이는 형식에 그칠 뿐, 중앙의 결정이 일방통행으로 집행돼온 것이 현실이다.
자체 재정기능 결여로 인해 독자적인 사업 추진도 불가능하며 지방정부의 독자적인 조직 구성 역시 엄두도 낼수 없는 것이다.
지방자치의 전면실시는 이러한 지방정부의 모습을 완전히 탈바꿈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12월30일 공포된 지방자치법은 지방정부의 기능과 사무에 관해 ▲지방자치 단체의 구역·조직 및 행정관리 ▲주민의 복리증진 ▲농림·상공업등 산업진흥 ▲지역개발 및 주민생활환경시설의 설치·관리 ▲교육·체육·문화·예술의 진흥 ▲지역민방위 및 소방등 사무들은 중앙 정부로부터 권한을 배분받아 독자적으로 처리하게 함으로써 이같은 탈바꿈이 가능하게 된것이다.
다만 외교·국방·물가정책·우편등 국가사무에 관해서는 지방정부의 기능이 제한되는 것으로 되어있다.
예를들어 고속도로나 교량건설의 경우 이는 비록 해당지방에 관련된 것이지만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분류, 사업추진 결정의 주체는 중앙정부가 되는 것이다.
지방자치제가 가장 잘 시행되고 있다는 서독의 경우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우리의 읍·면과 비슷한 게마인데(GEMEINDE)와 슈타트(STADT)로 구성돼 있는데 이는 그야말로 「작은 국가」형태를 지닌다.
이 지방정부는 거의 완벽한 독립체로 그 정부의 조직·구성도 각 지방마다 달라 크게 5가지 형태로 나뉘어 지방업무나 사업의 시작에서 끝까지 주민의사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
한양대 조창현교수(55·지방자치연구소장)는 『중앙과 지방간의 기능배분도 중요하지만 이에 상응한 권한의 배분이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업무만 잔뜩 위임하곤 권한은 중앙정부가 그대로 붙잡고 있으면 지방정부의 독자성이란 허울에 불과,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지방출장소」신세가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종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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