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길동 플라자 아파트(마음의 문을 열자: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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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훈훈한 정으로 「회색벽」 녹인다/3백54가구가 한가족처럼 지내/바자 열어 경조사 부조ㆍ학비 지원
『와­ 윷이다,윷. 정연엄마 한번만 더 윷이 나오면 우리가 이기는거야.』 하얀 머리카락의 홍기숙할머니(68)는 신이 난다는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소한은 갔지만 8일오후 흥겨운 윷놀이판이 벌어진 서울길동 프라자아파트 노인정은 이웃간의 훈훈한 정이 추위를 녹이고 있었다.
신종 아파트범죄로 아파트문을 함부로 열어주기가 무섭게된 세상인데다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극도의 이기주의로 이웃을 모르고 사는곳이 바로 도시의 아파트촌이다.
그러나 서울 길동 프라자아파트는 주민들간의 화목과 모범적인 관리로 서울속의 시골맛을 느끼게하는 동네다.
이런 분위기는 입주자 대표회장 노동권씨(69ㆍ전 마산세관장),노인회장 홍기숙할머니,관리소장 주한보씨(49) 등 숨은 일꾼들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정.
84년12월 입주할 당시는 이 아파트주민들 역시 이웃에 대해 냉담했다.
3백54가구가 모두 35∼40평규모로 신혼부부는 거의없고 대부분 중년층 가정인점에 착안,노인이 있는 집부터 친하게 사귀도록 유도했다.
노씨와 홍할머니는 문을 열어주기 꺼리는 집을 찾아다니며 아파트활동에 참여하도록 설득했다.
처음으로 시작한 「사업」이 아파트내 바자. 부녀회원들이 떡과 참기름을 팔아 수익금은 아파트 환경미화 비용과 주민들의 경조사ㆍ부조금으로 썼다.
이것이 주민들의 호평을 받기 시작,점점 더 많은 주민들이 아파트활동에 자진해 참여하고 자연스레 이웃들과 가까워지는 밑거름이 됐다.
관리소장 주씨는 이 아파트를 시골동네 같다고 표현했다. 가족의 생일에 이웃들을 초청하는것은 이제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초상이 나면 동네일이 되어 모두 자기일처럼 슬퍼하고 잘못하는 아이들은 친자식처럼 꾸짖어도 허물이 되지 않는다.
『16년째 아파트 생활을 해왔지만 우리동네만큼 주민들끼리 한가족처럼 지내는 곳은 처음입니다. 신정연휴때 시누이가 놀러와서는 제가 이웃들 하나하나와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보고는 「어쩜 이런 아파트촌이 다 있느냐」며 놀라더군요.』
통장 임희택씨(50ㆍ여)는 이 아파트에 살게된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입주기념일인 매년 12월6일은 바로 잔칫날.
「송편빚기대회」「가족대항 탁구대회」 등으로 아파트단지 전체가 활기를 띤다. 부녀회 회원들을 위한 「체조교실」과 「서예교실」은 상설기관.
서울 올림픽때 승용차 홀짝수 운행이 실시되자 노인회 회원들이 새벽부터 자발적으로 아파트정문앞에서 지키는 바람에 이 아파트에서는 1명의 위반자도 있을수 없었다.
매년 5월8일 어버이날에는 주민중 「효부상」과 「모범가정상」을 주어 가족간의 화목을 강조하며 전통적인 미풍양속을 가르치기도한다.
『주민들은 모은 장학금으로 야간신학대에 합격한 관리소직원 조모양이 대학에 갈수 있게 됐습니다.』관리소장 주씨는 주민들간에 정이 도타워 경비 등 모든일이 수월하다고 고마워했다.
이곳에서는 『아들이 대입준비중이니 떠들지 말아달라』 『애들이 쿵쿵거려 잠을 잘수 없다』는 등의 항의는 없어진지 오래라는게 주민들의 자랑거리.
『남들은 어떻게하면 더 큰 평소의 아파트로 이사갈까 궁리한다지만 우리가족은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오래오래 살렵니다.』
주민 김혜숙씨(40ㆍ여)는 동네 노인분들을 오래 건강하게 모시고 살고싶다고 했다.<남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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