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펀드' 첫 타깃은 태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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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칭 '장하성(사진) 펀드'로 알려진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가 대한화섬 지분 5%를 사들였다. 이 펀드는 대한화섬은 물론 모그룹인 태광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에도 본격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국내에서 만들어진 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가 특정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지분 매입에 들어간 것은 처음이다.

장하성펀드의 운용을 맡는 라자드에셋 매니지먼트 엘엘씨(특별관계인 2인 포함)는 23일 경영 참여를 목적으로 대한화섬 주식 6만8406주(5.15%)를 확보했다고 공시했다. 라자드 에셋은 이날 지분 보유 목적을 ▶소액주주 권리 개선▶독립적 이사회 운영▶계열사와의 거래 투명성 개선▶배당금 증액▶유휴자산 매각 등으로 밝혔다.

장하성 교수는 "대한화섬은 풍부한 자산을 보유한 좋은 회사이나 주가가 순자산가치의 5분의 1에 불과하고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며 "최근 대한화섬에 향후 지배구조 개선 및 사업계획에 대해 질문을 해 둔 상태"라고 말했다. 대한화섬은 태광그룹 계열사로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14.04%).태광산업(16.74%) 등 특수관계인이 53.9%의 지분을 갖고 있다. 3000억원대의 고정자산을 갖고 있지만 시가총액은 998억원에 불과하다.

장 교수는 또 "대한화섬이 최근 주력 사업인 페트병 관련 사업을 중단하고 새 사업 계획을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계열사인 태광산업의 케이블TV 사업 및 금융산업 진출 지원을 위해 우리홈쇼핑과 상호저축은행 지분 취득 등을 대행해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지분 매입 2주일 전 이를 대한합섬 경영진에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대한화섬 관계자는 "지배구조가 무엇이 문제라는지 알 수 없다"며 "주가도 6만원 수준으로 오히려 고평가된 만큼 경영 잘못으로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얘기는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장하성 펀드의 대한화섬 지분 인수 소식이 알려지면서 대한화섬의 주가는 급등해 9800원(상한가) 오른 7만5200원에 장을 마쳤다. 태광산업의 주가도 상한가를 기록하며 49만9000원으로 뛰었다.

김종윤.김준술.임장혁 기자

장하성펀드=고려대 장하성(53) 교수가 올 4월부터 국내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1200억~1300억원대의 자금을 모집해 설립한 펀드. 아일랜드에 등록돼 있으며 미국 버지니아대.조지타운대 재단 등 10여 개 해외 기관이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펀드의 운용은 라자드의 한국 책임자 존 리(48)가 맡고 있다. 장하성 교수는 "국내외에서 투자자를 모집했지만 국내 투자자들이 출자를 꺼려 모두 해외 투자자들로 펀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경영권 노리기보다는 시민운동 차원

"소버린처럼 기업 공격해 돈 번다" 시각도

▶뉴스분석 대한화섬은 화학섬유 생산이라는 본업보다는 모기업인 태광그룹의 유가증권 투자로 주목받는 회사다. '장하성 펀드'는 이 회사가 성장성이 높은데도 그룹의 돈줄 역할만 하다 보니 제대로 크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주가도 그만큼 저평가돼 있다는 것. 그런 만큼 지배구조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펀드가 내세운 대로 기업지배구조 개선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선 장하성 펀드가 사들인 5% 정도의 지분으로 대한화섬의 경영권을 위협하기는 어렵다. 이호진 회장 등 특수관계인이 가진 지분만 53.9%다. 장하성 교수도 대한화섬의 지배구조 개선만 요구했지, 경영권을 노리거나 경영진을 바꾸겠다는 뜻은 밝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번 지분 매입은 장하성 펀드의 존재가치를 세상에 알리면서 기업의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하는 일종의 시민운동 차원 성격이 짙다는 해석이다.

장하성 펀드의 행보에 대한 평가도 아직은 쉽지 않다. 좋은기업연구소 김선웅 소장은 "장하성 펀드의 투자는 외국계 사모펀드인 소버린이나 아이칸처럼 경영권을 위협하는 게 아니고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증권가 일각에선 장하성 펀드도 소버린이나 아이칸처럼 자본이득을 꾀하려는 게 목적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김종윤.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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