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평양의 음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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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저도 그 유명한 옥류관에 가서 평양냉면을 먹었습니다. 우리를 마중했던 북한 민화협(민족화해협의회)사람들이 옥류관으로 먼저 안내하더군요. 마침 점심시간이었습니다. 넓은 홀에는 많은 북한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얼핏 봤는데 냉면의 양이 상당히 많더군요.

우리는 특별손님으로 안내되어 전망이 좋은 베란다 좌석에 앉았습니다. 전망 정말 좋더군요. 바로 앞에는 대동강이 흐르고, 왼쪽으로는 능라도 경기장, 오른쪽으로는 주체사상탑이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냥 냉면 한그릇 먹고 나오는 줄 알았는데 완전한 코스 요리였습니다. 맨 먼저 녹두지짐이 나왔습니다. 녹두가루 외에는 아무 것도 첨가하지 않은 지짐이었는데 맛이 제법 괜찮았습니다. 다음은 우리에게 생소한 칠면조 불고기입니다. 의례원(종업원을 이렇게 불렀습니다)이 "칠면조 불고기입니다"하더니 우리가 칠면조를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칠면조는 오리보다 조금 큰 건데 맛이 좋습니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역시 그런 대로 먹을 만 합니다. 다음이 이제 메인 음식인 평양냉면이 나올 차례입니다. 그런데 "몇 그람을 드릴까요"합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어리둥절해 있는데 역시 우리의 정 기자가 "냉면 150그램하고 쟁반 150그램씩 주세요" 합니다. 원래 냉면만 먹을 때는 200그램이 정량이라고 하네요.

자, 이제 옥류관 평양 냉면이 나왔습니다. 의례원이 먹는 방법을 설명해줍니다. "고명을 옆으로 밀어내시고요, 면에 직접 식초와 겨자, 그리고 양념(고춧가루로만 버무린 것)을 치고 잘 비벼서 드시면 됩니다."


27일 옥류관의 오경 의례원이 평양냉면의 먹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범생이들처럼 가르쳐준 대로 열심히 비벼서 먹습니다. 생각보다 별로입니다. 좀 심심하다고 할까요. 북한 음식이 전체적으로 남쪽보다 싱겁긴 하지만 '옥류관'이라는 명성이 너무 컸던 때문인지 큰 감동을 주지 못했습니다. 쟁반은 그래도 우리 입맛에 맞더군요. 냉면 사리는 메밀로만 만든 데 비해 쟁반 사리는 전분이 좀 섞여서 쫄깃한 느낌을 줍니다. 냉면과 쟁반까지 먹고 나니까 정말 배가 터질 것 같습니다. 의례원이 메밀물을 한잔씩 줍니다. 이걸 먹어야 소화가 잘 된다나요. 마지막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나서야 코스가 끝났습니다.


점식식사를 마치고 옥류관 앞에서.

옥류관 냉면보다 감동적이었던 것은 '평양 단고기'입니다. 서대문에 함흥식 단고기집이 있습니다. 북한식 단고기라고 해서 흥미를 갖고 먹어본 적이 있는데 별로 맛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평양 단고기집을 간다고 했을 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완전히 예상을 뒤엎은 성공작이었습니다. (아, 이건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우리 식으로 전골, 도마, 탕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여기도 코스 요리입니다. 물론 우리를 특별 대접하느라 그런 것이지요. 부위별로 요리를 해서 나오는 데 먼저 푹 삶은 등뼈가 나옵니다. 깨소금에 찍어서 먹으라는데 맛이 훌륭했습니다. 다음 내장-갈비-껍질-심 순서로 나왔습니다. 이것들도 다 깨소금에 찍어먹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탕이 나옵니다. 탕에 넣는 고기는 잘게 찢어서 부드럽게 만들었습니다. 역시 너무 많이 먹었습니다. "이러다가 살 찌겠다"고 하자 정 기자가 "저는 여기 올 때마다 2킬로그램씩 쪄요" 합니다. 북한에 물자가 부족하고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 적어도 이곳은 풍족합니다. 이렇게 잘 먹어도 되나 하고 가책을 느낄 정도입니다.

고려호텔 1층에 찻집이 있습니다. 메뉴를 보니까 '산삼차'가 보이네요. 인삼차도 아니고 산삼차라니. 알아보니 오리지날 산삼은 아니고 장뇌산삼(산삼 씨를 산에 뿌려서 재배한 산삼)으로 만든 차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격을 보니 산삼차는 2유로(약 2천7백원, 북한의 공식 외환은 유로입니다. 달러는 미제국주의의 돈이기 때문에 공식 외환으로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달러도 다 유통됩니다) 인데 커피는 두 배인 4유로입니다. 어떻게 산삼차보다 커피가 비싼가. 설명은 이렇습니다. 커피는 수입품이고 산삼차는 국내산이니까 그렇다고요. 당연히 커피 마시지 않고 매일 산삼차 한잔씩 마셨지요.


옥류관 옆 베란다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남쪽대표단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평양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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