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 설킨 채권 채무관계 제자리 맴맴 13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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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아파트 건설 등 부동산 개발사업에는 수요자들의 관심을 끄는 프로젝트가 많다. 그러면서도 이들 사업이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경우가 많아 궁금증을 자아낸다. 내집마련 수요자와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프로젝트를 찾아 어떻게 진행되고, 어디로 굴러갈지 자세히 알아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13년째 공회전을 해 온 서울 한남동 단국대 부지 개발사업. 최근 일부 업체가 채권을 매입하면서 개발이 본격화된다는 보도가 나오며 고급주택 소비자들로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복잡하게 얽힌 채권.채무관계가 해결되지 않아 아직까지는 개발에 브레이크가 걸린 상태다.

단국대 개발사업은 1994년 세경진흥이 주도했으나 풍치지구 해제 특혜 논란이 불거져 전 지역이 고도제한구역으로 묶이면서 무산됐다. 이어 외환위기 때 시행사와 시공사가 모두 부도나면서 생긴 복잡한 권리 관계가 지금까지 공사를 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단국대 부지에 대한 채권은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와 자산관리공사(캠코)가 각각 보유하고 있다. 이들 채권은 신한종합금융과 삼삼종합금융이 옛 시행사에 돈을 빌려주고 담보로 받은 액면가 1500억여원의 어음을 말한다. 두 종금사가 파산하면서 어음의 주인이 예보와 캠코로 바뀐 것이다.

따라서 단국대 부지개발사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특정 사업자가 이 두 채권을 인수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 채권은 최근 금호건설 컨소시엄과 또 다른 사업자인 휘트니스서비스인터내셔널에 각각 넘어가게 됐다.

예보가 갖고 있던 채권은 5월 공매에서 1445억원을 써낸 휘트니스서비스에 낙찰됐다. 이 채권은 신한종금이 96년 첫 사업시행사인 세경진흥에 856억원을 빌려주고 땅 처분에 따른 수익권을 담보로 받은 것으로, 98년 신한종금이 파산하자 예보가 관리해 왔다.

또 다른 채권은 한국부동산신탁이 96년 공사비를 대기 위해 시공사에 발급한 수익권 증서다. 이 채권은 한부신의 부도로 돈을 빌려준 삼삼종금으로 넘어갔고, 캠코가 다시 인수해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올 초 단국대가 이 증서를 환수, 부지 소유권을 찾은 뒤 금호건설컨소시엄에 3318억원을 받고 팔았다. 이처럼 개발의 키를 쥔 2개의 채권이 다른 사업자에게 넘어가면서 사업 지연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해 10월 한남동 부지 개발 시공사로 선정된 금호건설은 4만652평의 부지에 700가구의 고급 빌라단지를 조성할 계획이었다. 금호건설 관계자는 "휘트니스 측이 채권을 낙찰받아 담보권을 행사하더라도 단독 개발은 어려운 상태"라며 "앞으로 단국대 등과 협의를 거쳐 부지 개발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호건설 측도 예보 채권 처리를 위한 자금 마련이 마무리되는 대로 단국대 측과 협의를 통해 다른 채권 인수를 포함한 개발 문제를 풀어나갈 방침이다. 결국 한쪽이 채권을 모두 인수하든가, 아니면 공동으로 사업을 벌여야 탈출구가 마련되는 셈이다.

그렇더라도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이 개발사업에는 채권 관계 외에도 한남동 주택조합 등 다수의 소액 채권자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주택조합은 한남동 부지에 대한 소유권 소송을 진행 중이다.

조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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