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가 소설가로 우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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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영국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부커상(Booker Prize)'의 올해 수상자는 전혀 의외의 신인이다. 14일 발표된 수상자는 디비시 피에레(42.DBC Pierre). 그는 소설 데뷔작인 '버논 갓 리틀(Vernon God Little)'로 영어문화권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큰 상을 거머쥐었다.

피에레는 많은 사람에게 빚을 지고 살아왔다. 이는 모두 망나니 같은 젊은 시절의 상처다. 그가 소설가로 변신한 동기 역시 '망나니 같은 젊은 시절을 참회하는 마음'이었다. 유별난 이름은 그 같은 참회의 마음을 담은 필명이다. DBC란 곧 "더럽지만 깨끗하기로 마음먹은(Dirty But Clean)"이란 뜻이다.

원래 그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호주에서 부유한 과학자의 집에서 태어나 멕시코로 이주해 부자동네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불행은 눈보라처럼 겹쳐 몰려왔다. 19세 되던 해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숨졌고, 곧이어 멕시코 정부가 은행을 국유화하는 과정에서 재산의 대부분이 날아갔다. 이후 피에레는 마약과 도박에 빠져들었다. 마약과 도박엔 돈이 많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온갖 범죄를 저질렀다. 밀수와 사기를 밥 먹듯했다. 친구의 집을 사기쳐 팔아먹고 도망치기도 했다.

피에레가 새로운 삶을 결심한 것은 불과 3년 전. 그는 아일랜드로 이사하면서 소설가로 변신했다. "참회하는 마음에서 글을 쓰기로 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미국의 현대사회, 그 저급한 정신문화를 비꼬는 블랙코미디다. 텍사스에 사는 버논이란 고등학생이 학교에서 친구들을 대량 학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감옥에 갇히고, 거듭 거짓말을 해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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