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00대 기업 경기 둔화 대비 현금 쌓기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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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세계 100대 기업들이 쌓아놓은 현금성 자산(현금+채권+단기금융상품)이 1조1000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가 21일 보도했다. 세계 경기 둔화에 따라 기업 수익성이 나빠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확산하면서 기업들이 안전자산인 현금 보유를 늘리고 있는 것이다.

시장조사기관인 톰슨 파이낸셜에 따르면 세계 100대 기업의 현금성 자산은 1999년 이후 계속 늘어나 2004년 처음으로 1조 달러를 돌파했으며, 올 들어서는 1조100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기업뿐 아니라 기관투자가들의 현금 선호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주 메릴린치 조사에 따르면 기관투자가 중 33%는 현금 비중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메릴린치 조사 시작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JP모건의 시장전략연구소 책임자인 얀 로에이스는 "기관투자가들이 가장 안전한 자산인 현금 비중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메릴린치가 최근 전 세계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내년 기업 이익이 악화할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들이 52%에 달했다. 이는 지난 7월 조사(44%) 때보다 8%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데이비드 보우어스 컨설턴트는 "이는 2003년 이라크전쟁 당시와 맞먹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FT는 기업들이 막대한 현금을 쌓아놓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이익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설비도입.공장건설 등 자본투자를 늦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장기 성장의 관점에서 투자하기보다는 단기적인 현금 흐름과 주주 배당 등을 중시하면서 현금 보유를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국내에선 기업공개(IPO)나 회사채 발행 등 직접 금융을 통한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7월 기업의 직접금융 조달액수는 3조1387억원으로 전달보다 30.9% 감소했다. 특히 주식 발행은 전달 대비 48.0%나 줄었다. 이 중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조달은 전달보다 절반 이상(52.5%), 기업공개도 17.9% 감소했다. 회사채 발행도 전달에 비해 26.3% 준 2조6355억원에 그쳤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성봉 선임 연구원은 "최근 증시가 조정 양상을 보이는데다 불투명한 경기 전망 탓에 자금조달을 꺼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윤창희.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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