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계적 선수의 속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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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86, 88 양 대회의 성공적 개최로 집약될 수 있는 80년대 한국스포츠의 만개는 경기력 면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걸출한 스타들을 무수히 배출해냈다.
이미 79년 세계 양궁 선수권대회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명궁 김진호(김진호) 가 83년 선수권에서 5관왕을 차지, 정상임을 재확인한 한국 양궁은 서향순(서향순·84 LA) 김수녕(김수녕·88 서울·89 선수권) 에 의해 대를 물려 부동의 선두를 지키고있다.
그런가하면 83년 세계 탁구 선수권에서 단식 2위를 차지한 양영자(양영자)는 86아시안 게임에서 단체전 우승의 주역이 됐고 이후 현정화(현정화)와 조를 이뤄 87선수권·88올림픽을 연거푸 석권,「환상의 복식조」라는 극찬을 받았다.
올림픽 종목은 아니지만 90년 북경 아시안 게임에 첫 채택된 배드민턴의 박주봉(박주봉) 도 정명희(정명희)와 조를 이룬 혼합복식에서 올해 5개의 타이틀을 따내는 등 최근4∼5년간 세계 정상을 지키고 있어 영국령 국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대 스타.
그러나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으로부터 시작하여 한국 스포츠가 거둔 기적같은 성과는 복싱·레슬링·유도 등 격투기에서 보여준 불꽃같은 투혼이 밑받침되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84년8월1일 LA올림픽에 참가하고 있던 한국 선수단에는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3kg급에서 김원기(김원기)가 첫 금메달을 땄다는 낭보가 알려졌다. 이를 기폭제로 하여 『우리도 할 수 있다. 그리고 해내야만 한다』는 결의가 모두의 가슴에 피어나기 시작했고 곧이어 자유형의 유인탁(유인탁·68kg급), 유도의 안법근(안병근·72kg) 하형주(하형주·95kg), 복싱의 신준섭(신준섭·미들급) 이 각각 금을 보태 사상 처음 10위를 마크한 한국의 19개 메달(금6·은6·동7) 중 15개(금5·은4·동6)가 이 세 종목에서 나왔다.
메달레이스 4위를 기록, 기적적 성과로 평가받은 88무대도 마찬가지.
금메달 12개중 6개가 레슬링(김영남. 한명우) 유도(김재엽·이경근) 복싱(김광선·박시헌) 에서 나왔고 33개의 전체 메달 중 레슬링에서만 모두 9개(금2·은2·동5)의 메달이 나왔다.
여기에 올들어 신예 김종신(김종신·19)이 세계 선수권에서 북한 이학신을 제치고 우승, 무려 23년만에 세계선수권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불굴의 정신력을 바탕으로 분발한 투기 종목들의 기량향상은 마치 종잦돈과도 같은 역할을 담당, 신체적 핸디캡이 서구에 비해 큰 구기에서도 일대 비약을 실현시켰다.
여자농구의 경우 박찬숙(박찬숙) 김화순(김화순)같은 스타가 탄생, LA 동·86 은메달을 따냈고 LA 5위· 86 은메달을 거머쥔 남자 배구에서는 강만수(강만수) 김호철(김호철) , LA은메달에 이어 88 금을 수확한 여자 핸드볼에선 윤병순(윤병순) 성경화(성경화), 86 은메달 남자핸드볼의 강재원(강재원), 역시 88 은메달인 여자하키의 임계숙(임계숙) 황금숙(황금숙) 같은 세계적 스타들이 줄지어 탄생했다.
그밖에 골프계에선 미국 무대에 도전하고 있는 구옥희(구옥희) , 축구에선 서독 분데스리가를 누빈 차범근(차범근) 등 세계적 프로 선수를 배출했고 은반에서까지 배기태(배기태)라는 정상급 스프린터를 탄생시켰다.
사격의 박병택(박병택)은 센터파이어 권총 비공인 세계 최고기록을 보유하고있고 89보디빌딩 월드게임에서 한동기(한동기·80kg급)가 따낸 금메달소식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종목에서도 세계수준을 향한 접근이 이뤄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또 월등한 체격열세로 아시아인에게 절대 불리한 육상에서도 아시안으로 유일하게 올림픽결선에 오른 여자높이뛰기의 김희선(김희선)과 남자멀리뛰기의 김종일(김종일) 이 태극마크를 빛냈고 장재근(장재근)은 82, 86아시안게임 2백 m를 2연패, 아시아 최고의 스프린터가 되었다.
80년대를 시작할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1천5백 달러 수준이었고 지금은 3천 달러. 급격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경제적 성장과 함께 체육입국을 향해 총력을 쏟은 메릿 시스팀이 거둔 결실들이다.<김인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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