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차별이 서글픈 여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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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립인 서울A여고에서 영어시간 강사 3년만인 올 봄에야 정식교사로 채용된 이모 교사 (26·여) 는 이번 대인원서 작성 때 사대지망 학생들에게 『여자가 사대를 나와봤자 정식교사가 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야. 요행히 자릴 잡더라도「산너머 산」이니 다시 생각해 보라』며 극구 말리는 선배 여교사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럴 수가…』하고 내심 기가 막혔으나 곧 선배 여교사들이 학생들의 사대지원을 말린 이유를 짐작할 만 했다.
오직「여교사」라는 사실 때문에 주임은 고사하고 담임배정에서 조차 제외되는 등 여교사로서 겪는 불이익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명문 S대 영문과를 나온 이 교사 자신도 한시간에 2천원,
기껏 늘려서 2천5백원씩 셈해 받던 3년차 시간 강사라는 설움을 겪었다. 정식 교사발령 후에도 교무실의 성가신 잡일을 도맡고 있는 처지다.
무엇보다 여교사들의 호봉이 높아지면 재단·학교측이 무슨 구실을 붙여서라도 사직을 강요해 여교사가 사립학교에서 정년퇴직하기란「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
A여고의 경우도 21명의 여교사 중 40세 이상은 2명뿐이다.
때문에 많은 여교사들은「평생 직장」이라고 믿고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대학졸업 당시 같은 과의 성적이 한결 낮은 남학생들은 두세 학교가 서로 채용하겠다고 해「골라잡는 입장이었어요」이 교사는『그러나 여자들은 시간강사 자리마저 요행으로 여겨 채용과정부터 엄청난 남녀 차별은 교단에 선 후에도 여전하다』고 했다.
서울 B중에 근무한지 2년 만인 올 봄에 결혼, 출산을 눈앞에 둔 유모 교사(28)는 요즘 교장이 사표를 내라는 통에 여간 괴롭지 않다.
교감과 학년주임을 통해 은근히 사직을 종용해도 유교사가 듣지 않자 겨울방학을 앞두고 교장이 유 교사를 불러『그 모양을 해 가지고 남학생들 앞에 나서다니 창피하지도 않느냐』 는 등 졸렬하게「자존심 건드리기 작전」을 펴는게 아닌가.
『소위「기부금」을 내지 않고 채용된 까닭에 학교측이 임산부라며 노골적으로 사표를 감요해요」
유 교사는『출산휴가 (2개월)가 법적으로 명기돼있으나 사립 학교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며『여교사의 교권을 학교측이 짓밟고 있다』고 했다.
현재 전국 초·중·고 교사 30만4천명 가운데 여교사는 40%가까운 12만1천명에 이르며 매
년 증가추세다. 학교별 여 교사 비율은 국교 48·7%, 중학교 43·7%, 일반계 고교 21%, 실업계고교 23%.
직급별로는 국민학교의 경우 교장2%, 교감4%, 주임교사 8%이며 중학교는 교장·교감이 각각 6%를 차지하고 주임교사는 l6%다.
그러나 사립은 국·공립 보다 훨씬 뒤쳐 교장 3%, 교감 2%, 주임교사 8%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교장·교감의 대부분이 교사로 첫발을 내디딘 일반 여 교사가 아니고 재단 친·인척들이다.
이처럼 여교사들은 임용에서 승진에 이르기까지 두루 차별받고 있다. 사립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뿐만 아니라 일부 사립학교에서는 출산 휴가 기간 중 임시로 채용해야하는 강사급료를 출산당사자인 여교사에게 부담시키고 있다.
『강사급료를 부담하지 않으면 사직 권유에 배겨나기 어려워 울며 겨자 먹기로 강사급료를 낼 수밖에 없었어요』
지난해 9월 출산한 서울Y중 정모 교사(27)는 『교사로서 정도가 아닌 줄 알면서도 자리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경기도 의정부시의 사립 D중·고는 얼마 전 여교사를 채용하면서「결혼하면 퇴직하겠다」는 각서를 공증까지 해가며 받아 말썽을 빚기도 했다. 이에 사립학교 여교사들은 2개월의 유급출산 휴가를 보장받는 국·공립 여 교사들을「우리 처지에 비하면 여공 대우」라고 부러워한다.
국·공립 여교사들도 출산휴가를 신청하려면 눈치가 보인다. 그래서 교장에게「특별사례」를 하는 경우가 없지 않고 2개월 휴간기간을 다 채우기는 흔치 않다.
『전체교사의 40%에 이르는 여교사들이 비율에 걸맞게 대우받기는커녕「교직의 여성화우려」라는 왜곡된 분위기에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인천 E고 임모 교사(34·여)는『학생의 남녀 비율이나 교사의 남녀 비율에 비춰 교장·교감의 95%이상이 남자라는 점은 교육의 균형에 어긋난다』고 했다.
문교정책 입안과정에서도 진정 여 교사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전문가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한다.
한국교총의 유임한 여성부 회장인 부평서 여중 변해명 교감은『기혼교사 등을 기피대상으로 꼽고 있는 것은 잘못된 편견』이라며『출산·육아경험에 따른 이해와 포용력 등으로 학생들에게 더 세심한 관심과 애정을 쏟을 수 있는「감화 교육」의 기본바탕을 갖추고 있어 교육적 효과는 남 교사보다 높다』고 했다.
여교사에 대한 차별은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이는 여교사가 맡고 있는 교육적 책임을 부정하는 모순이며 교육의 질과 교육발전을 가로막는 남녀차별의 병폐라는 교육계의 지적이다.<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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