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금으로 살아온 이영순씨 이웃돕기 성금 남기고 하늘나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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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한달에 40만원을 정부에서 지원받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할머니가 자신이 평생 모은 돈 100만원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남기고 세상을 떴다. 주인공은 지난달 지병으로 별세한 이영순 할머니(76.서울 한강로2가).

이 할머니는 2000년 10월부터 매달 40만원씩 받는 정부 지원금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이웃의 아이를 돌보며 생긴 푼돈으로 살림을 꾸려왔지만, 고령으로 아이들 돌보기가 힘들어지면서다. 슬하에 1남1녀가 있었지만, 자식들이 사업에 실패해 연락도 끊긴 상태였다. 2002년 초에는 당뇨합병증으로 시력까지 잃었다. 자식들과 왕래가 끊기면서, 할머니의 유일한 말벗은 일주일에 한두 차례 찾아오는 사회복지사뿐이었다.

강영미 사회복지사는 "항상 밝은 표정으로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던 마음씨 착한 할머니"라고 기억했다.

할머니는 지원금을 아껴 100만원이라는 '거금'을 모았다. 단칸방 월세 15만원과 병원비, 생활비로도 빠듯했지만 한푼두푼씩 모은 것이다. 임종 직전 연락이 닿은 아들 임모(49)씨에게 "내가 죽으면 이 봉투를 동사무소에 전해달라"며 유서 두 장과 두툼한 봉투 한 개를 건넸다.

16일 사망신고를 위해 동사무소를 찾은 아들 임씨는 어머니의 유언대로 유서와 성금을 전달했다. 평생동안 소일삼아 모아온 우표책 한 권은 자신을 돌봐준 사회복지사에게 선물로 전했다.

할머니가 직접 쓴 두 장짜리 유서에는 "일금 100만원정. 위 돈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동사무소 사회복지과 아가씨에게 맡깁니다" "사회복지사 아가씨 고마워. 잊지 않을게. 이건 내 마지막 선물이야. 다음 생에 만나면 꼭 보답할게" 등 세상을 향한 온정이 담겨 있었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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