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인의이것이논술이다] 출제자의 의도 파악이 최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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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문제에 답할 때도 일정하게 기계적으로 처리해야 할 순서가 있다. 우선 물음을 읽고 생각하고 분석하는 일, 제시된 자료를 분석하는 일, 쓸 글을 구상하고 구성하는 일, 집필하고 퇴고하는 일 등이 그것이다. 충분히 습관이 배지 않았다면 정해진 시간에 이들을 모두 잘하기가 빠듯하다. 특히 논제를 먼저 읽고 생각하고 분석한 후에 제시된 자료로 나아가야 하며, 이 순서를 어기는 것은 위험하다.

모든 자료는 출제 교수의 의도에 따라 재배치된 것이다. 교수들이 문제를 출제하면서 가져온 여러 자료들은 원래는 자기 나름의 맥락에서 만들어지고 쓰인 것들이다. 가령 논술 문제로 가장 많이 출제된 <장자>라는 책은 논술 문제를 위해 쓰인 책이 아니다. <장자>의 한 대목을 논술 문제에 데려온 사람은 다름 아닌 출제 교수다. 출제 의도를 아는 것은 이래서 중요하다.

사정이 이렇기에 각 자료를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서는 '출제 의도'라는 실마리가 필요하다. 보통은 물음 속에 이 '출제 의도'가, 즉 각 자료들을 읽을 관점이 주어져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제시 자료를 먼저 읽고 물음을 읽는 것은 올바르지 않으며, 철저히 고쳐야 할 잘못된 습관이다.

가령 2006학년도 서울대 정시 논술 문제를 보자. "사례 , , 는 현실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경쟁의 양상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이 세 가지 경쟁의 성격을 설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쟁의 공정성과 경쟁 결과의 정당성에 대해 논술하시오. (제시문 <1> ~ <7>을 참고할 것)" 이 물음에는 10개의 제시 자료가 뒤따른다.

많은 학생이 10개나 되는 자료 때문에 무척 당황했다. 하지만 물음부터 분석했다면 그렇게 당황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사례들은 '현실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경쟁의 양상'을 보여주는 것들이어서 그 특징과 차이를 파악하면 되었고(물음의 길잡이), 다른 7개의 제시문은 '경쟁의 공정성과 경쟁 결과의 정당성'이라는 누구나 한 번쯤은 다뤄봤음직한 문제에 관한 참고 자료일 뿐이었다. 제시문을 읽을 때 이런 문제의식 또는 관점을 갖고 읽는다면 낯선 것이라고 기죽지는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논술에서 좋은 습관을 기른다는 말은 앞서 말한 순서대로 문제에 접근하는 습관을 들인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주어진 시간 안에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다. 이는 많은 연습을 통해서만 습득될 수 있다. 최근 고려대 1학기 수시를 치른 한 학생이 자신은 충분히 생각한 후 개요를 쓰고 글을 써가겠다고 결심했었지만 양옆과 앞쪽의 학생들이 전부 글을 쓰는 모습을 보고 그만 자신도 모르게 글부터 쓰고 있더라고 고백을 했다. 대부분의 학생에게는 이것이 현실인 것이다.

그러니 다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리면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해서 여름이 온 것은 아니다'. 즉, 많은 반복 훈련을 통해 문제에 접근하는 습관을 몸에 배게 해야만 비로소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다. 평소의 습관 만들기는 이래서 중요하다.

김재인 유웨이 중앙교육 오케이로직 논술 대표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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