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서 전원 물갈이 … 앞으로 6년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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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효숙 헌법재판관이 헌법재판소장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법조계가 술렁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사시 동기인 데다 헌재 재판관으로 있으면서 현 정부 정책과 맥을 같이하는 판결을 잇따라 내린 점을 들어 '코드 인사'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특히 법조계에서는 내년 3월 퇴임하는 주선회 재판관을 포함해 헌재 재판관 모두가 노 대통령 임기 중 교체되는 것과 관련해 "대통령이 기존의 판을 뒤집으려 한다"는 지적도 있다. 헌재가 2004년 11월 신행정수도 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려 정치적 타격을 봤던 노 대통령이 헌재의 도움을 절실히 느꼈을 것이란 분석에서다. 이번 인사에선 헌재소장을 포함한 9명의 재판관 가운데 5명이 새로 임명된다.

◆ 다수 의견과 배치된 결정 자주 내려=2003년 헌법재판관에 임명될 때부터 노 대통령과 성향이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은 전 재판관은 정부 정책과 관련한 주요 결정에서 정부 측 의견과 같이했다.

그는 2003년 노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에서 재신임 국민투표 발언을 한 것과 관련한 이만섭 전 국회의장 등이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각하(합헌) 의견을 냈다. 민주노동당 등이 "이라크 파병안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파괴한다"며 낸 헌법소원에 대해서도 역시 정부 측의 손을 들어줬다.

특히 위헌 결정을 받아 큰 파장을 불러왔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2004년 11월) 헌법소원 사건에서는 재판관 9명 중 유일하게 "행정수도 이전 정책은 국민투표를 요하거나 헌법 개정을 요하는 문제가 아니다"며 각하 의견을 냈다. 이후 신행정도시특별법(2005년 11월) 헌법소원 사건 때는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04년 5월 대통령탄핵심판 결정(기각)에선 어떤 의견을 제시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당시 헌재가 재판관 개인의 의견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반대 입장 공식 표명한 변협=대한변호사협회는 성명서를 내고 전 재판관의 헌재소장 임명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변협은 "헌법재판소는 각종 정치적 쟁점에 관해 국가와 사회의 운명을 좌우할 판단을 하게 되는 중요한 곳이므로 헌재소장은 대법원장 이상의 경륜과 풍부한 법률 지식을 갖춰야 한다"며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가치관을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새 소장이 헌재를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할 경우 헌재는 권력의 통제기관으로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고 대법원에 예속될 우려도 있다"며 "전 재판관은 지금까지 중요한 정치적 사건의 결정에서 정치적 이념성이 편향돼 있음을 보여 줬고 대통령과 고시 동기의 연고도 있다"고도 했다. 변협은 "이런 점들로 인해 전 재판관이 헌법재판소장이 될 경우 헌재의 결정들이 자칫 공정성을 의심받거나 정치적 분쟁을 야기해 국민 전체의 불신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유기준 대변인도 "노 대통령의 사시 동기인 전 재판관을 헌재소장에 임명하면 코드 인사가 되지 않겠느냐"며 "전 재판관이 사회 전반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헌재의 수장 역할을 맡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코드인사라는 의심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내정한 것은 무척 아쉽다. 정치적 독립성이 훼손될까 심히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이상렬 대변인도 논평에서 "노 대통령은 청와대와 정부 부처, 대법원장에 이어 헌법을 최종적으로 유권해석하는 헌재소장까지 코드에 맞는 인사를 내정하려 한다"고 밝혔다. 헌재 관계자들은 "예상치 못한 내정"이라는 반응이다.

◆ 재판관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헌재의 주요 결정은 소장을 포함한 9명의 재판관이 모여 이 중 6명이 동의해야 한다. 따라서 어떤 인사가 재판관으로 임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창립 멤버인 조용환(사시 24회) 변호사는 노 대통령이 지명할 유력한 인사로 거론된다. 국회 한나라당 추천 몫으로는 이동흡(사시 15회) 수원지법원장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공동 추천은 목영준(사시 19회) 법원행정처 차장이 내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장은 민형기(사시 16회) 인천지법원장, 김종대(사시 17회) 창원지법원장, 신영철(사시 18회) 서울중앙지법 수석 부장판사 등을 놓고 막판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서는 김희옥(사시 18회) 법무부 차관과 홍경식(사시 18회) 법무연수원장이 거론된다.

문병주.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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