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맞벌이 육아 위해 직장끼리 뭉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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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서울 서초동 '푸르니 어린이집'. 오전 간식으로 단호박 찹쌀죽을 먹은 만 2세 꿀벌반 아이들이 면봉 물감놀이에 한창이다. 1시간여의 실내놀이에 실증이 날 때쯤 아이들은 바깥놀이터로 나갔다. 모종삽과 채로 모래놀이를 하고 풀을 뜯어 토끼에게 먹이를 주다보니 쌀쌀한 날씨에도 여간 신나지 않는다.

지문인식기를 갖춘 현관문, 1백여평 규모의 바깥놀이터 등 국내 최고수준의 시설을 갖춘 이곳은 대교.하나은행.한국IBM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직장 어린이집. 여러 회사가 컨소시엄 형태로 만든 국내 최초의 직장보육시설이다.

*** 창문 하나도 "어린이 보호"

지난달 16일 개원한 푸르니 어린이집은 생후 6개월~취학 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아이를 맡아주는 시간도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로 부모들의 들쭉날쭉한 퇴근 시간을 백분 헤아렸다.

23개월 된 아들을 보내고 있는 이은경(29.대교 전략기획실 계장)씨는 "밤 8, 9시에 퇴근해 데리러 가도 저녁까지 먹여주니 정말 좋다"고 말했다. 이씨는 아이를 푸르니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지난달 봉천동에서 서초동으로 이사했다.

3사는 어린이집의 운영을 위해 지난 3월 '푸른보육경영'이라는 전담 운영기관을 만들었고, 공동으로 기금을 조성했다. 푸른보육경영 이사장을 맡고 있는 송자 대교 회장은 "직원 자녀들이 미래사회의 우수한 인력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국내 최고 수준의 시설과 프로그램을 갖출 것"이라고 밝혔다.

음식점으로 사용되던 2층 건물을 10년 장기 임대해 건평 3백40평 규모의 어린이집으로 리모델링하면서 IBM 본사가 미국 내 IBM 직장보육시설을 위해 마련한 기준대로 시설을 꾸몄다. 아이들의 안전에 대한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그대로 적용시킨 것.

*** 저녁 10시까지 돌봐줘

어린이의 키보다 훨씬 높은 곳에 위치한 창문은 아이의 머리가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까지만 열린다. 비상시 건물 안에서 밖으로 빠져나오는 탈출미끄럼은 IBM 측의 지적을 받고 아이들이 이용하기 쉽도록 다시 설치하기도 했다.

푸르니 어린이집은 모두 7개 반 중 만 2세 이하 영아반이 5개나 된다. 교사 비율이 높아야 하는 영아반을 많이 만들 경우 운영에 부담이 되긴 하지만 직원들의 수요조사에서 영아반에 대한 요구가 높았기 때문이다.

교사 대 어린이의 비율도 만 2세까지는 1대 3. 영유아보육법 기준인 만 1세 1대 5, 만 2세 1대 7에 비해 두배 이상 강화했다. 가장 큰아이들 반인 만 4, 5세반도 1대 14로 법 기준인 1대 20보다 낮다.

어린이집 박진재 원장은 "사교육을 따로 시킬 시간이 없는 맞벌이 가정 아이를 위한 질 높은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원어민 교사를 초빙해 만 4, 5세반 영어수업을 하고 있고, 대교의 음악교육 프로그램 '소빅스 오르프슐레'도 도입했다. 또 바쁜 맞벌이 가정의 형편을 고려, 부모 상담도 인터넷 상담코너를 활용한다.

푸른보육경영 측은 내년 3월엔 일산과 분당에서도 푸르니 어린이집을 개원할 예정이다. 직원들의 밀집거주지역을 찾아 앞으로 전국 30여곳으로 확대할 계획. 또 동참을 원하는 다른 기업도 컨소시엄에 합류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이지영 기자<jyle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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