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계 현안] 아시아재단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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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화의 '조용한 파트너' 아시아재단(윌리엄 풀러 총재)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비영리 민간단체인 아시아 재단은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의 전후 복구와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문화.학술.언론 및 사법제도.시민단체 등을 꾸준히 지원해 왔다.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한국사무소장은 13일 저녁 신라호텔에서 열린 기념 리셉션에서 "우리는 지난 50년간 한국에 총 9천3백만달러(1천2백억원)를 지원했다"고 말했다.

1954년 한국 땅에 최초로 발을 디딘 아시아 재단이 최초로 손댄 것은 '신문용지 수입'이었다. 당시는 3년에 걸친 한국전이 끝난 직후라 종이가 상당히 부족했다. 아시아재단은 한국의 언론계를 돕기 위해 수천 t의 인쇄용지를 수입해 지원했다. 이 종이는 신문 발행은 물론 '사상계' '현대문학''희망'등의 잡지 발간과 57년에 발행된 '한글학회 큰사전'인쇄에 사용됐다.

또 재단은 한국 학계의 서적 부족 사태를 해소하기 위해 62년부터 각급 학교와 대학 도서관 연구소에 도서 기증 사업을 해 왔다. 지난 33년간 재단이 한국의 각급 단체에 기증한 도서는 1백80만권에 달한다. 또 63년에는 외교관들의 자질 향상을 위해 외교연구원 개설을 지원했다.

전쟁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문 70년대부터 아시아재단은 한국의 시민단체 육성과 민간 지도자 연수에 주력했다. 특히 재단은 한국 여성의 정치 참여를 북돋우기 위해 여성유권자연맹을 지원하는 한편 여성 근로자에 대한 법률교육, 여성 지도자들의 미국 연수 등을 지원했다.

또 재단은 성곡언론재단과 손잡고 한국 언론인들의 하버드 대학 연수를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70년대 후반 유신 시절은 서울에 주재한 외국 민간단체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은 어려운 시기였다. 63년부터 두 차례에 걸쳐 아시아재단 서울 사무소장을 역임한 데이비드 스타인버그(조지타운대)교수는 "아시아 재단은 처음부터 한국의 미래에 강한 믿음이 있었다"며 "한국 정치 상황이 암울한 시기에도 우리는 제자리를 지켰다"고 말했다.

아시아재단은 최근 북한의 개방을 돕기 위해 베이징에서 북한 간부들을 대상으로 국제법 연수를 주선하는 한편 농업지원 등 북한 지원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반세기에 걸친 아시아재단의 한국 지원은 하나둘씩 결실을 거두고 있다. 61년 아시아재단의 지원으로 미국에 건너가 실리콘 밸리에서 컴퓨터 벤처 기업가로 성공한 이종문 암벡스그룹(Ambex Group)회장은 13일 리셉션에 참석, 감격스런 어조로 "생큐 아시아재단(Thank you Asia Foundation)"이라고 인사말을 마무리지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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