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獨작가 요제프 보이스 작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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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7월 20일 여름 햇살이 쨍한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 뒷마당에서 떠들썩한 굿 한 판이 벌어졌다. 이날 굿을 이끈 이는 도포에 갓을 쓴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였다.

그는 별신굿과 행위예술을 곁들인 이 추모제를 5년 전 죽은 동료 요제프 보이스(1921~86)에게 바쳤다. 살아 있을 때 아시아에서 날아온 무명의 백씨를 형제처럼 감싸준 보이스는 무속신앙이 남아있는 친구의 고향을 언젠가 한 번 밟아 함께 굿판을 벌이는 꿈을 꾸다 갔다.

독일 현대미술이 손꼽는 작가 요제프 보이스는 이처럼 유라시아의 무속을 동경하고 그 샤머니즘을 작품으로 풀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예술과 과학이 불화해 생긴 현대적 삶의 정신적 위기를 치료하겠다고 나섰던'현대판 무당'이었다.

14일부터 11월 30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요제프 보이스-샤먼과 수사슴'은 동양에서 빌려온 영적인 교류로 서양 현대 미술이 부닥친 한계를 뛰어넘으려던 한 전위 예술가의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는 작은 회고전이다.

보이스가 샤머니즘의 세계에 접신한 계기는 제2차세계대전 때 독일의 조종사로 전투에 참여했다가 옛 소련의 크리미아 반도에 추락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경험에서 왔다. 그곳의 원주민이었던 타타르족이 다 죽게 된 그에게 기름을 발라주고 펠트 천으로 감싸 살아나게 했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보이스는 그 뒤로 자신에게 새 생명을 준 그들을 잊지 못했다. 펠트와 기름 덩어리가 보이스가 즐겨 쓴 작품 소재가 된 까닭이다.

전시장 바닥이나 벽에 펼쳐져 있는 펠트 천 작품들은 보이스가 겪었던 그 절체절명의 순간을 되살린다. 짐승의 털로 만든 부드럽고 따뜻한 펠트는 또한 폭력과 살육의 20세기를 지배한 '남성성'에 반한 '여성성'을 상징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영국 화상 앤서니 도페이(63)는 요제프 보이스의 작품을 관람하는 방법으로 '생각하기'를 권했다. 도페이는 "생각하라, 생각하라, 또 생각하라"고 말했다. 녹았다가 굳고, 굳었다가 다시 녹는 기름덩어리 종이 상자 앞에서 도페이는 "이렇게 흘러가는 자연 현상을 거스르려는 인간 사회를 예술로 바꿀 수 있다고 본 사람이 요제프 보이스"라고 설명했다.

전시장 한 쪽에 설치된 영상물은 보이스가 1987년 독일 카셀에서 열린 '도큐멘타 8'에 선보였던 '7천 그루 참나무'를 보여주고 있다. '7천 그루…'에서 보이스는 7천 개의 육각형 현무암을 카셀의 프리드리히 거리에 있는 박물관 앞에 쏟아놓은 뒤 참나무 한 그루를 심고 현무암을 그 옆에 세웠다. "도시를 관리하는 대신 도시를 산림화하자"는 이 프로젝트는 인간과 자연의 화해를 의도하는 보이스의 예술관을 읽게 한다.

지금도 카셀의 지도를 보면 곳곳에 녹색 점이 찍혀 있는데 바로 그 곳에 보이스가 심은 나무가 솟아 있다.

"우리는 나무를 심고 나무는 우리를 심는다. 우리는 서로에게 속해 있으므로 공존해야 한다." '인생이란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될 수 있는 하나의 창조적인 과정'이라고 본 요제프 보이스의 목소리가 여기서 솟아오른다. 02-735-8449.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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