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밤의 꿈' 영국서 혹평 … 연출가 양정웅 "할 말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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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성룡 기자

박찬욱과 봉준호가 '영화계 스타 감독'이라면 연극계의 스타 연출가는 단연 양정웅(38.극단 여행자 대표.사진(左))씨다. 세계 최고 권위의 극장 영국 런던 바비칸 센터에, 그것도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사진(下))을 한국적으로 꾸며 입성했다는 것은 올해 한국 연극이 이룩한 최대 성과임에 틀림없다.

바비칸 공연을 비롯, 45일간 유럽 투어를 마치고 최근 귀국한 그를 만났다. 이번엔 철저히 공격적으로 물었다. 어느새 거장 반열에 합류하려는 젊은 연출가에 대한 통과 의례라는 차원에서, 혹은 그의 작품 세계를 곱지 않게 보는 시각에 대한 그의 항변을 듣기 위해서였다. 인터뷰가 중반쯤 지나자 예의 바르고 유순하기로 소문난 그의 눈빛도 매서워졌다.

-영국 타임스가 '웃음만 넘쳐날 뿐 원작의 깊이를 살리지 못했다'고 리뷰하는 등 혹평이 많았다.

"영어 번역상 문제가 있었다. 원래 우리 작품은 자막을 올리지 않는다. 한국어의 운율감을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바비칸의 요구를 받아들인 게 오히려 악재였다. 그러나 철학적 깊이 운운은 난센스다. 원작 자체가 낭만 희극이다. 한 순간에 반하고 덧없기도 한 인생과 사랑을 토속적.해학적으로 풀었다. 꼭 심각하고 진지해야 깊이가 있는 것인가."

-양 연출가의 작품엔 '배우가 안 보인다'고들 한다.

"'연극의 본질은 배우'라는 시각에서는 그렇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배우만큼 빛과 음악, 미장센도 중요하다. 그런 것들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자기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어야 진정한 배우다. 배우를 죽이고 싶지도 않지만 나머지 요소를 희생시키면서까지 배우를 돋보이게 하고 싶지도 않다."

-스토리는 약한 채 시각적 요소에만 집착한다는 비평도 많다.

"기승전결의 구조를 스토리로 한정한다면 난 거부한다. 서양식 연극을 그냥 답습할 뿐이다. 동양적.한국적 양식은 어쩌면 시작과 끝도 없고, 반드시 갈등과 결말의 구조도 아니다. 심지어 '배우가 없는 연극'도 상상해 본다. 상상은 예술의 출발점이다. 대다수가 말하는 게 본질은 아니다."

-각색 작품에 치중, 창작의 부재를 지적하기도 한다.

"아니다. 극단 여행자의 작품 중 절반가량이 창작이다. 그러나 각색인들 어떤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게 이미 나와 있다면 국내 희곡이든 외국 작품이든 받아들이는 데 꺼리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렇게 수용한 원작을 나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그것 또한 창작이다."

-당신을 욕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무릇 예술가라면 고집과 비타협적인 면모가 있어야 한다. 너무 정치적인 것 아닌가.

"인간적 풍모와 예술적 풍모는 다르다. 난 극단의 대표다. 단원도 챙기고, 경제적인 것도 고려해야 한다. 혼자 하는 예술이 아닌 만큼 타협점을 찾고 하모니를 이뤄야 한다. 또한 나는 예의 바르고 밝고 긍정적으로 성장했다. 굳이 예술을 떠난 자리에서 까다롭게 굴 필요가 있을까. 예술적 자기 허영 아닐까."

글=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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