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예예' 해놓고 '예예하면 좋겠냐'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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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시 작전 통제권과 관련 "우리의 방위력은 지속적으로 증강되고 있다"면서 "전시 작전권 환수는 2009년에서 2012년 사이 어느 때라도 상관없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또 "작전권 환수시기를 앞당겨도 국가안보에 아무 문제가 없으며 한국군의 역량도 충분하고 한미동맹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시 작통권 환수와 관련해해 노 대통령은 "염려안해도 된다. 주한미군은 계속 주둔한다"고 쐐기를 박았다. 이어 노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이 미국 하자는 대로 '예, 예' 하길 한국국민이 바라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작전통제권 시기상조론에 대해서도 '언제가 적절한가'라고 물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의 주장이 100% 틀린 것은 아니다. 예컨대 작통권 환수가 지금으로부터 20년전인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이 1987년 대통령 후보시절 대선공약으로 내걸었고 입안했던 자주국방을 위한 해묵은 숙원 과제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새삼 참여정부에 들어와 유별나게 추진하는 정책이 아니라고 한 애기는 맞는다.또 '한국의 방위력이 증강되고 있다''주한미군 주둔군의 숫자가 아니라 질적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에도 대체로 동의한다.

사실이다. 명명백백한 사실까지 호도하면서 대통령의 발언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대통령 얘기대로 작통권을 언제까지 외국의 손에 맡겨둘 수도 없다는 얘기도 일리는 있는 얘기다. 따라서 노대통령에 대한 나의 비판은 상대론적인 입장에 서있다. 한 마디로 '이 문제를 지금 이런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최선인가?' 하는 측면에서 논의해보고 싶은 것이다.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국 대통령이 미국 하자는 대로 '예, 예'했으면 좋겠냐' 라는 발언이다. 나는 이 발언을 정책적 측면에서 보고 싶다. 왜냐면 노대통령은 미국에게 '예예' 한 것은 물론 자신의 비외교적 언행으로 부시 대통령에게 머리를 숙이며 사과까지 한 보기 드문 대한민국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시계바늘을 2003년 6월로 돌려보자.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사태와 관련 한국에 파병을 요청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현안이었던 북한 핵문제에 연계시켜 활용하려 했다. 노대통령은 연설에서 "이라크에 추가 파병하려면 한반도 상황에 안보 변화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이라크에 파병해줄터이니 북한 핵문제는 한국이 하자는 대로하자는 것이었다. 북한 핵문제와 이라크 파병은 '아이스크림에 김치를 비벼먹는' 식의 연계할 수 없는 이슈였다. 그런데 노대통령은 이걸 연계시키자고 떼를 쓴 것이다.

노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은 부시 대통령의 격노를 샀다. 2003년 10월 14일 뉴욕타임스는 "9월 25일 윤영관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이 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을 만났을 때 '미국이 북핵문제에 있어 양보하지 않으면 한국의 이라크 파병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며 "그러나 파월 장관은 화가 나서 '이는 동맹국을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노대통령은 당시 안보보좌관이었던 나종일씨를 통해 2003년 10월 12일 미국 측에게 '6자회담과 이라크 파병을 연계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노대통령 사과 친서를 부시 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노무현대통령은 입버릇처럼 '자주와 협력적 동맹관계'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 파병 사례가 보여주듯이 노대통령은 자주적이지도 않고 동맹을 중시하지도 않는다. 청와대의 외교를 굳이 표현하자면 3부재(不在)다. 즉 전략부재, 일관성부재, 실리부재말이다.

노대통령이 신주단지 모시듯이하는 '자주'를 지켜 이라크에 한국군을 파병안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최소 소신과 정책의 일관성은 유지될 수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이 2004년 6월 주한미군 1만2500명 감축을 통고하자 정부는 일주일도 안된 6월12일 부랴부랴 파병을 결정했다. 결국 노대통령은 미국에 '예예'는 물론 '사과'까지하고 자주와 소신 그리고 정책 일관성마저 잃었다. 자신이 외교안보적 오판과 실수로 '예예'에 '굽신'까지 해놓고 이제와서 '한국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게 예예하면 좋겠냐'라니. 할말이 없다.

둘째로 타이밍문제를 거론하고 싶다. 외교안보의 60%는 타이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통권 환수는 하나의 당위다. 그러나 지금 한반도는 미사일 위기에 이어 핵위기를 겪고 있다. 이는 한국의 외교안보가 1950년 한국전이래 최대의 쌍둥이 위기에 처했다는 얘기다. 미국의 전략적 협조가 절실하다. 그렇다면 작통권 환수는 위기 해소 이후로 미루는 것이 좋다. 지금 작통권을 환수하려는 것은 불난집에 소방호스를 빼앗는 격이다.

셋째로 외교안보 사안은 정의의 관점에서 보지말고 이익의 관점에서 보라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인권 변호사 출신답게 외교안보를 정의의 관점에서 본다. 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작통권 환수, 자주국방는 한국이 국가로서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익의 관점에서 보면 사정은 다르다. 주한미군,연합사이런 장치는 한국의 국익에 엄청 플러스 요인이다. 과거 이승만으로부터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역대 대통령이 무슨 작통권의 문제점을 몰라서 잠자코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연합사와 주한미군 주둔이 한국의 국익에 엄청난 플러스였기때문에 이를 수용했던 것이다. 대통령 말이 맞다.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작통권을 환수해도 한국의 독자적 방어가 가능하다. 그러나 분명한 현실을 아무리 한국이 방위비를 늘려도 주한미군과 연합사가 갖는 전략적 파워를 갖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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