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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떡없다'는 한·미동맹 … 미국서 더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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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무현 대통령은 9일 "(한.미가) 약간의 입씨름을 한다고 해서 (동맹이) 파탄 나는 사이라면 그건 심각한 문제가 있는 관계"라고 말했다.

동맹에 금이 갔다는 주장에 대해선 "협상 중에 나오는 자연스러운 이견을 갈등이라며 자꾸 부풀리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동맹은 굳건하니 걱정하지 말라는 거였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도 비슷한 얘기를 해 왔다.

하지만 워싱턴에서 이런 식으로 말하면 웃음거리가 된다. 이곳의 한국 외교관들이나 파견 나온 공무원들은 대부분 오늘의 한.미동맹에 대해 걱정한다. 미 행정부의 파트너들과 수시로 접촉하는 그들의 입에서는 "이러다간 큰일 난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미국 쪽은 어떤가. 국무부에서 한국과장(2002~2004년)을 지낸 데이비드 스트로브는 9일 "부시 대통령과 노 대통령은 서로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에 대한 두 지도자의 시각이 너무 달라 신뢰가 싹트기 어렵고, 9월 정상회담 후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노 대통령의 화법에 미국이 자극받느냐는 질문에 "미국 관리들은 이젠 노 대통령의 성격 때문이거니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부시 대통령도 김정일에 대해 심한 말을 하면 주변에서 '못마땅하더라도 외교를 생각해 좀 신중해야 한다'고 충고하는 이들이 있었다"며 "말을 조심스럽게 하는 게 외교"라고 덧붙였다.

오공단 미 국방연구원 동아시아담당 책임연구원은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는 양국의 전문가들이 조용히 협상하면 되는 것인데도 노 대통령이 자꾸 정치적으로 말하는 바람에 일이 꼬인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신뢰가 흔들리고 동맹은 약화됐다"고 그는 주장했다.

한쪽에선 아무 이상 없다는 동맹이 다른 쪽에선 왜 흔들린다고 하는지, 노 대통령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노 대통령은 한국의 진보세력에 대해 "대화와 타협을 할 줄 알아야 한다"며 "합리적이지 않은 것은 진보든, 보수든 사회에 기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참으로 옳은 얘기다. 지금 이런 충고를 들어야 할 사람은 노 대통령 자신이 아닐까.

이상일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