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권 = 자주국방 = 주권' 문제로 인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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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9일 연합뉴스와의 특별회견을 통해 한.미 FTA,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를 둘러싼 논란의 한복판에 직접 뛰어들었다. 노 대통령의 9일 발언에는 이 논쟁에서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곳곳에 배어 있다.

노 대통령은 전작권 환수를 주권 문제와 결부시켰다. "작전통제권이야말로 자주국방의 핵심이며, 자주국방이야말로 주권국가의 꽃"이라고 했다. 이런 논리를 펴는 과정에서 민감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한국 대통령이 미국 하자는 대로 '예, 예' 하길 한국 국민이 바라느냐", "한국이 북한을 상대로 자기 방위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언급이 그것이다.

◆ 정면 돌파 의지 밝힌 노 대통령=전작권을 미국이 원하는 2009년에라도 가져올 수 있다는 발언에선 설사 미국과 갈등을 빚더라도 이 문제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노 대통령은 이미 당선자 시절부터 전작권 환수를 예고했다. 2003년 1월 18일 TV토론에서 노 당선자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다시 체결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미 방위조약, 전시작전권, 한.미 주둔군지휘협정(SOFA) 등 세 가지 핵심 사항에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단박에 여론은 들끓었다. 하지만 20여 일 후인 2월 13일 노 당선자는 한국노총을 방문해 "막상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국군에 대한 지휘권도 대통령이 갖고 있지 않다"고 전작권 공론화에 다시 불을 지폈다.

노 대통령이 전작권 문제에 대해 이처럼 강한 집착을 보이게 된 뿌리가 언제부턴지는 정확지 않다. 다만 대선 직전인 2002년 10월 당시 노 후보에게 외교안보정책을 자문하던 서동만.이종석씨 등이 함께 쓴 '한반도 평화보고서-한반도 위기극복과 평화정착의 방법론'이라는 책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보고서에는 '대북협상력을 높이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군사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전시작전통제권이 환수돼야 한다'는 대목이 들어 있다. 4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9일 "남북관계의 안정을 위해서도 (전작권 환수가) 꼭 필요하며 앞으로 남북 간 긴장 완화를 위한 군사협상을 할 때도 한국군이 전작권을 갖고 있어야 대화를 주도할 수 있다"는 노 대통령 발언과 맥이 닿는다.

◆ 전작권 환수는 철학=결과적으로 전작권 환수는 노무현 정부 외교안보정책의 핵심이자 철학인 셈이다.

그런 만큼 노 대통령의 발언이 불러올 파장은 간단치 않을 전망이다. 정책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확신을 바탕으로 깔고 있는 철학은 그리 쉽게 바뀔 수 없다. "이런 국가적 전략을 이데올로기 싸움이나 정쟁 대상으로 악용해선 안 된다. 최선을 다해 국민을 설득하고 성공시키려 한다"는 발언에서 노 대통령은 누가 뭐래도 이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반면 전직 국방장관들이 집단 모임을 갖는 데서 보듯 전작권 환수에 반대하는 여론도 들끓고 있다. 정치권도 이 논란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그 때문에 자칫 전작권 문제는 한국 사회를 보.혁 논쟁의 용광로 속에 밀어넣을 수 있다. 특히 9월 한.미 정상회담까지 겹쳐 가장 큰 외교.안보 현안의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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