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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주관」정립에 몸부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억압과 항거의 불협화음속에 시작됐던 80년대의 어둠이 다가오는 90년대의 여명조차 가리고 있다. 민주희생자의 고혼을 달래는 분노의 씻김굿도 시대가 앓고 있는 병을 아직 고치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문이 열릴 듯 닫혀버린 아쉬움속에 80년대는 시작되었고 지난 긴 세월은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좌표위에서 맴돌며 흘러갔다.
80년대는 이렇게 저무나 이나라 근대화 과정에서 이 연대가 갖는 시대사적 의미는 실로 크고 무겁다. 그것은 70년대의 질곡에 대한 반명제이자 90년대의 과제를 일깨우는 전환기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지난 10년동안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고 여러 의미를 던져 주었다. 여러변화들 가운데 두드러진 것은 각양각색의 집단적 욕구분출이라고 할 수있다.
「사회구조」 의 차원에서 보자면 분화와 다양화다. 그리고 분화된 집단들이 엮는 「사회관계」 의 구도는 계급간의 갈등과 대립이고 이는 사회에너지를 낭비하며 총화의 응집력을 희석시킨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대립관계나 「사회의식」 저변에 흐르는 기존 권위와 질서에 대한 불신과 저항, 민주화 욕구는 억압사회 구조가 변한데서 오는 당연한 산물이라는 점이다.
이념의 분열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밖에 없다. 나라의 특수사정으로 인하여 감춰두었던 사회주의·좌파이념이 이 시대에 서슴없이 「당파성」 으로 주장되는등 「이데올로기 학습」 은 우리의 발전사에서 언젠가 맞아야만 했을 것이었다. 다만 이날까지도 분단의 아픔이 좌파 이데올로기 자체의 발전을 막은채 논의는 19세기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마디로 사회구조는 다양화, 사회관계는 불신과 대립, 사회의식은 분열-. 이것이 80년대 한국사회의 형상이다.
이러한 갈림의 기본축은 계급과 지역이었다. 구조의 문제라서 해결의 묘약이 없는채 말엽에 이르면 새 양상으로 탈물질주의적 요구가 가미된다. 탈산업사회로의 변화조짐으로 보이는 환경·인간존엄, 삶의 질에 대한 중산층 시민의 요구가 언제 자신들이 이기적·공리적 물질주의자였었나 싶게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어찌보면 이들 계급·지역·탈물질 의식으로 삼분된 왜곡구조에서 개인과 집단이 함께 공유하는 약속과 규범과 존중이 담겨야할 「사회적 공간」이 무너져 내려 혼란의 연속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조차 내면의 모순을 실천세계에서 극복해 보려는 안간힘으로 보고, 더욱이 극미립자의 운동을 파악키 어려우나 희랍이후 지성과 지혜의 힘이 형상의 중요성을 간파한즉, 세세한 것보다 전체사회의 형상으로 건강도를 가릴수 있으면 된다.
80년대의 약점은 무정형의 의식속에 「사회적 주관」 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였지만 봇물 터진 듯 쏟아진 모순의 표상들을 주체치 못하면서도 역사의 관성법칙 덕에 그럭저럭 버틴 시대다.그러나 이 타성이 90년대까지 지속되면 새 세기를 맞을 채비에 오차가 생긴다.
고쳐야 할 많은 것중 다원까진 안되어도-그것은 자율성을 지닌 집단간의 유대가 튼튼해야 되니-다양한 사회의식속에 숨 쉬고 있는 귀한 개인들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주는 바탕위에 국가와 사회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할 것이 있다.
이런 구도에서는 급성장한 사회운동세력이 사회공간으로부터 일탈치 않고 기존의 지배적 구도에 비판을 가하는 세력으로 「참여」 하고 형평의 토대를 잡아주며 향후 10년의 방향을 조타하여 과거의 대결구도를 화합구도로 바꿀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서울대교수·정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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