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이슈 '재신임'에 묻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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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새만금 방조제-위도 원전센터 건설-북한산 관통도로-이라크 전투병 파병까지. 시민단체들의 현안 이슈가 잠정 '스톱'상태에 들어갔다. 노무현 대통령 재신임 발언의 여파다. 시민단체에 메가톤급 파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현안이 재신임 국민투표에 묻혀버릴까 걱정하면서도, 한편에선 이를 세력 확대의 기회로 보고 있다.

당초 참여정부의 환경정책이 마뜩찮았던 환경단체들은 새만금 공사중지 가처분을 이끌어낸 데 이어 부안군 위도 원전센터 반대 운동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녹색연합ㆍ환경운동연합.참여연대 등 국내 41개 단체가 '반핵국민운동'을 결성, 핵폐기장 백지화를 요구했다. 환경단체들이 모처럼 총결집, 지역민들과 연대해 정부에 맞서왔다.

이런 상황에서 재신임 논란은 자칫 국민과 지역 주민들의 관심을 엷게 할 가능성이 크다.

녹색연합 최승국 협동사무처장은 "새만금.핵폐기장.북한산 관통도로 등 현안이 모두 재신임 이후로 미뤄질 상황"이라고 말했다. 환경운동연합 박진섭 기획실장은 "정부는 주요 정책을 재신임 이후로 미루지 말고 병행해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라크 파병 문제는 진보와 보수의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 진보진영은 "일단 시간을 벌었다"는 판단이다. 지난달 23일 3백51개 단체로 구성된 '이라크 파병 비상국민행동'의 리더격인 참여연대는 "미국도 한국이 재신임 정국에 들어갔는데 계속 파병 압력을 넣긴 어려울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들은 지난 3~4월 파병 반대 운동을 벌이다 정부가 비전투병을 파병하면서 동력을 잃었던 터다. 이번엔 '전투병'을 표적으로 결집했지만, 보수단체와 대립각을 세운 상황이다.

반면 "이라크 파병은 한.미 동맹 강화와 국익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파병 지지 결의를 밝힌 반핵반김국민대회.재향군인회.자유시민회의 등 보수단체는 격렬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 자진사퇴 촉구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반핵반김청년운동본부는 12일 대통령의 즉각 하야를 주장하는 성명서를 냈다. 재향군인회 주최로 15일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열리는 '이라크 파병지지 대회'와 예비역대령연합회 주최로 25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구국강연회'도 盧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집회가 될 공산이 크다.

이들 사회적 현안과 별도로 '정치개혁국민행동'을 결성, 정치개혁에 관심을 쏟아온 경실련.시민의힘.바른사회를위한시민회의 등 64개 중도단체는 난감해 하면서 중심잡기에 여념이 없다.

경실련의 고계현 정책실장은 "연말까지 집중적인 민생.정치개혁법안 통과 운동을 벌일 예정이었는데, 재신임 이슈에 파묻혀 물 건너갈 공산이 커졌다"고 말했다.

정치권 관심이 온통 재신임 국민투표에 쏠릴 텐데 개혁법안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내년 총선도 이 같은 국면에서 정치공방으로 변질될 것이 뻔해 후보 자질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실종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참여연대의 생각은 다르다. 김기식 사무처장은 "오히려 정치개혁의 움직임이 빨라질 것이며 국민에게도 정치개혁의 슬로건이 더욱 호소력있게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정치개혁시민연대'소속 2백40여개 단체들은 14일 '정치개혁 촉구 전국대회'를 열고 각 당 대표들을 방문해 정치개혁에 앞장서 줄 것을 촉구할 예정이다.

그런가 하면 盧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 발언이 참여정부와 갈등 관계를 빚고 있는 상당수 진보단체들을 다시 지지그룹으로 U턴시키는 효과도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시민단체들도 정치 격랑에 점차 휩쓸리는 모습이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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