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차, 잘 나가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구수한 맛'이 '쌉쌀한 맛'을 압도했다. 우리나라 차(茶) 음료 시장의 이야기다. 매년 60% 이상 크는 이 시장에서 쌉쌀한 녹차보다 구수한 혼합차가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다.

남양유업은 자사 혼합차 제품 '17茶(차)'가 지난달 말 출시 1년 만에 1억병 이상 판매됐다고 7일 밝혔다. 초기에도 한 달에 150만개 이상 팔리며 음료시장에 돌풍을 일으킨 이 제품은 올 여름 성수기에 접어들어 월 평균 2000만 개 정도씩 팔린다. 남양유업은 올해 이 한가지 품목으로 1000억원의 매출을 거뜬히 올릴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해 녹차 음료 시장의 규모가 450억원, 올해 예상치가 800억 원 정도에 불과해 혼합차 시장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 한국은 '구수' 일본은 '쌉쌀'= 차 음료 시장은 대체로 우리보다 5년 정도 앞서 일본에서 형성됐다는 게 정설이다. 웰빙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일본에선 1995년 차 음료 시장 규모가 탄산음료를 앞질렀다.

두 나라에서 모두 커가는 시장이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일본은 전체 9조5000억원 정도(2003년 기준)인 차 음료 시장에서 녹차가 4조원을 차지한다. 혼합차는 이의 절반인 2조원 정도다. 쌉쌀한 맛의 녹차를 선호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다. 심지어 녹차의 쓴 맛을 내는 성분인 카테킨 함량을 더 높여 출시한 '오이오 차'가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업체들이 녹차 제품마다 "떫은 맛을 없앴다"고 광고하는 한국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남양유업의 박병창 음료사업부장은 "일본은 녹차 문화가 발달해 쌉쌀한 맛에 익숙하지만 한국인은 보리차.옥수수차 등 구수한 맛에 익숙해 혼합차 시장이 강세인 것 같다"고 말했다.

◆ 구수한 차 제품 덩달아 인기='구수한 차'시장을 잡으려고 기존 녹차 제품을 내놨던 업체까지도 혼합차 제품을 내놓고 있다. 동원F&B는 올 초 음료에 들어갈 재료 수를 25개로 대폭 늘린 '25선차'를 내놨다. 동아오츠카에서는 비파엽.월견초.결명자 등 10가지 재료를 내세운 '건미차'를 시판했다. 한편'구수한 맛'의 원조 격인 웅진식품의 '하늘보리'판매량이 뛰었다. 2000년 출시 당시 "집에서 만든 보리차와 별 다를 게 없다"는 시큰둥한 반응과 함께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했던 제품이다. 그러다 올 상반기 지난해 동기보다 100% 넘는 매출 성장을 이뤘다. 요즘은 한 달 평균 8억원 이상 팔린다.

이 회사의 최인규 마케팅기획팀장은 "불과 5년 전만 해도 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아 고전했는데 건강.미용에 관심 많은 20대 여성.주부들의 손길이 우리 제품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김필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