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막후조정」 계속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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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9일 폐막된 중공 당 제13기5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5중 전회)는 중국최고실권자 덩샤오핑(등소평)의 공식은퇴와 중국권력의 핵인 군 권에 대한 판도를 가름하였다는 점에서 결정적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등이 당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당 총서기 장쩌민(강택민)에게 넘긴 것은 형식상권력의 핵이 원로세대로부터 강을 중심으로 하는 혁명 제3세대로 넘어간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등소평은 당내 일체의 지위에서 스스로 물러난 중국의 유일한 최고지도자가 되는 긍정적 역사를 기록했으며 이와 함께 강이 당과 군을 동시에 장악하는 제1인자가 되었다.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뚱(모택동)의 말과 같이 중국에서는 군을 장악하지 않고서는 실권자가 될 수 없다.
따라서 당 군사위를 장악하는 지도자가 중국의 실권을 장악하는 것이며 등의 권력도 이 같은 배경을 빼고서는 설명되기 어렵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강이 당과 군의 최고자리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당장 명실상부한 최고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이유에서 의문이 남아있다.
첫째는 등이 비록 국가군사위 주석직도 내놓겠다고 선언하는 등 일체의 당직에서 떠난다고는 하나 등은 여전히 막후에서 대국을 조정할 수 있는 권위가 있다. 그의 건강이 남아있는 한 막후 영향력행사에는 변함이 없을 것으로 봐야한다. 주요 직책을 스스로 물러난 것은 종신제의 폐단을 시정하는 모범을 보인 것이지만 실질적 영향력까지 포기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등은 87년 10월말 개최된 제13차 중공 당 전당대회에서 일선에서 은퇴하는 것으로 발표됐으나 여전히 최고통수권 자로서의 위치를 유지해왔다.
지난5월 당시 총 서기이던 자오쓰양(조자양)이 고르바초프 소련 당 서기장과의 회담에서 이미 등이 은퇴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정책은 여전히 등의 자문이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내부결정이 있다고 밝힌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둘째는 양상쿤 (양상곤) 국가주석과 그의 사촌동생 양바이빙 (양백빙) 등 양가장들의 요직 포석이다.
양상곤이 당 군사위 제1부주석을, 양백빙 인민해방군 총 정치부주임이 당 군사위 비서장겸 서기처서기로 승진한데다 양상곤의 사위인 군 총 참모장 츠하오티엔(지호전)이 당 군사위원으로 유임됨으로써 양가장의 세력확대를 보여주고 있다.
외신은 양상곤이 강택민을 당 군사위주석으로 앉히려는 등소평에게 대항했으나 투쟁에서 실패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홍콩의 중국문제전문가들은 양가장이 등소평과 투쟁을 벌였다는 분석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명보는 10일 사설을 통해 양상곤은 등의 사람으로 등의 뜻을 십분 존중했다고 전제하고 양이 등과 투쟁을 벌였다는 설을 『믿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으며, 좌파 시사월간지 『경보』 편집국장 린원(임문) 도 양가장의 군 권은 오히려 강화된 것으로 봐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등의 이번 당 군사위 인사를 강택민과 부주석으로 승진한 리우화칭 (유화청) 을 한 팀으로 하고, 양가장을 다른 팀으로 성격 구분한다면 이 두 팀의 세력균형을 도모한 균형인사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등의 사람으로 군 경험이 풍부한 유로 하여금 강택민을 보좌케 함으로써 강의 지위강화를 도모하려는 의도를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집단지도체제의 성격을 띤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인사에서는 현역군인인 양백빙을 정치국 결정사항의 집행기관인 서기처의 서기를 경직케 함으로써 군의 영향력 증대라는 부정적 색채를 도입한 것도 눈에 뛴다.
등의 은퇴는 그가 중앙위에 보낸 서신에서 지적한 것처럼 종신제의 폐단을 철폐하고 「신노교체」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등은 사퇴의 변을 통해 자신의 건강이 괜찮을 때 물러나는 것이 당과 군의 사업에 유익하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9월 노벨상수상자인 미국적 화교 리정따오(이정도) 교수에게『지금은 나이에 비해 건강하지만 언제 정신이 흐리멍텅해 질지 모른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등은 자신의 건강이 남아있고 사고력이 정상적일 때 후계자를 지명하여 그의 기반을 굳혀두는 것이 앞으로의 혼란을 최소화하거나 예방하는 길이라고 믿고 실행에 옮긴 것으로 해석된다.
강이 자신의 위치를 굳히기 위해서는 ▲등이 상당기간 건재하고▲양가장을 포함한 이해집단, 특히 원로들의 특권을 잘 조정하며▲그 자신 큰 착오를 피해야한다고 볼 수 있다. 천안문사태의 근원이었던 경제적 혼란과 부정부패척결은 그의 당면과제이자 권력유지의 관건에 해당한다.
부정부패척결을 잘해야 민심을 얻지만 그렇다고 철저성이 지나칠 경우 고위간부와 그 인척들을 적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진퇴양난에 빠져있는 현실을 그가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관심거리다.
【홍콩=박병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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