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거리는 부시의 중동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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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미국의 중동 정책이 총체적으로 휘청대고 있다. 이란.이라크.레바논.팔레스타인 어디 한 곳 마음을 놓을 만한 나라가 없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4일 미국이 중동 각국에서 외교 정책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태 악화의 최대 원인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이다. 미국 입장에선 지난해까지만 해도 레바논은 비교적 사정이 좋은 곳이었다. 지난해 3월 레바논에서는 대규모 반시리아 시위가 벌어졌다. 시리아군의 레바논 주둔에 반대하던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가 암살당한 데 대한 항의였다. 결국 시리아군은 철수했다. 시리아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미국으로선 크게 반길 일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올 7월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군인 2명 납치를 명분으로 레바논을 침공하면서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FT는 "이스라엘의 공격이 헤즈볼라의 군사력을 크게 약화시켰다는 증거는 별로 없다"며 "오히려 헤즈볼라의 정치적 영향력만 커질 조짐이 보인다"고 분석했다.

팔레스타인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해 1월 온건파인 마무드 압바스가 자치정부 수반이 되면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는 듯했다. 그러나 올해 1월 하마스가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미국의 기대는 산산이 깨졌다. 이라크의 종파 갈등은 거의 내전 수준이다.

전통적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도 사정이 썩 좋지 않다. 양국 모두 1년 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대대적으로 내세웠던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미국의 기대에 부응할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다. 오히려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이 지역 무슬림들의 반감만 커지고 있다.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장은 F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이번에 레바논인들의 생명에 별 관심이 없다는 인상을 줬다"며 "이는 아랍권에서 급진주의가 득세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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