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즐겨읽기] 글쟁이의 똑 소리 나는 글짓기 과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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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글쓰기 만보

안정효 지음, 모멘토, 532쪽
1만9000원

일기를 쓸 때 날짜 다음에 날씨를 꼭 적어 넣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통사람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을 이 질문의 답이 이 책에 있다. 날씨는 사람의 감정과 분위기, 활동 여건을 상당 부분 설명해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맑음' '흐림'이라고만 적지 말고 '참으로 상쾌한 아침'이라거나 '질퍽한 오후' 또는 '밤에는 우울하게 주룩주룩 유리창에 흐르는 빗물'이라고 쓰는 버릇을 들이면 창작을 향한 훈련을 시작한 셈이라고 귀띔한다.

지은이는 150여 권의 번역서와 '하얀 전쟁' '은마는 오지 않는다' 등 창작소설을 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글쟁이다. 이 책은 그가 어떻게 지금과 같은 글을 쓰게 되었는지 술회하는 '자전적 글쓰기 교본'이다. 제목은 만보(漫步), 그러니까 한가롭게 슬슬 걷는 걸음이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엄격하고 체계적이며, 무엇보다 치열하다. 스무 살 때부터 습작을 하면서 읽었던, 30여 권의 서양의글쓰기 지침서들과 그 후 접한 뛰어난 작가들의 문체와 기법, 체험, 영화 등을 현란하게 엮어가며 제대로 된 글쓰기 방법을 일러준다.

예를 들면 '있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없앤다'란 원칙을 강조한다. 문장에서'~있다' '수' '것'만 솎아내도 문장이 간결해져 힘이 생긴다는 뜻이다. '가고 있는 것이다'보다 '간다'가 훨씬 힘이 있음을 예로 든다. 또 "나는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란 표현은 스스로의 기분에도 확신을 못 갖는다는 뜻이라며 '~같아요'의 남용을 질타한다.

이런 주옥같은 글쓰기 지침이 담겼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책은 창작 안내서다. 일기 쓰기에서 시작해 이름짓기, 인물 만들기, 주제 잡기, 줄거리 짜기, 초벌 끝내기 등을 차근차근 알려주어서다. 그렇다고 교과서 식은 아니다. 다양한 예문과 작품, 대가들을 소개하는데 읽는 맛이 어지간한 수필집 못지 않다.

굳이 작가를 희망하지 않더라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첫 장과 마지막 장은 눈여겨 볼 가치가 있다. 지은이는 "좀 미안한 얘기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아직 위대한 작가가 아니다"라지만 '대가'가 되기 위한 첫 걸음은 뗄 수 있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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