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큰손」도 행동대원|「짜고 버는 증시」주가조작 누가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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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증권사 직원들과 짜고 거액의 시세차익을 챙긴 강남의 큰손들은 과연 누구일까.
자본금 40억원 규모의 중소업체인 세신실업의 총발행주식 80만주 가운데 무려 30여만주(38%, 60억원 상당)를 통째 사들일 정도의 자금동원능력도 대단하지만, 주식발행사에 대고 『무상증자를 실시하라』고 압력까지 넣었다는 이들의 뒷 배경에는 만만치 않은 인물들이 숨어있는 것이 틀림없다.

<한계 느낀 감독원>
현재 증권감독원이 조사한 바로는 한신증권 테헤란로지점 김종대 차장과 함께 주가조작을 해온 표면적인 인물은 3∼4명선. 그러나 이들은 큰손들의 행동대원에 불과하다는 게 감독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전주(돈주인)는 따로 있다고 보는 것이다.
증권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투자자들 사이에 얽히고 설키는 관계가 워낙 복잡해 아직 사실규명조차 하기 어려운 상태며 수사권을 갖고있지 않는 감독원이 조사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인물을 불러 진술서라도 한번 받을라치면 『왜 감독원에서 오라 가라 하느냐』며 반발이 거세다는 것.
더구나 이들 사채업자들은 주식거래에 모두 현금을 사용했기 때문에 자금추적조사가 거의 불가능해 배후인물 추적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증권감독원 특별검사팀은 그같은 거액의 주식거래가 한신증권의 김차장 선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며 상당한 거물급과 연계됐을 가능성을 시사했으며 배후인물을 가려내기 위해서는 검찰이 나서줘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5∼6명 고발 방침>
증권감독원은 이에 따라 김차장 등 한신증권 관련자와 이미 윤곽이 드러난 다른 혐의자 5∼6명을 검찰에 고발할 방침인 것으로 알러졌다.
대다수 선량한 투자자들을 볼모로 삼아 증시에서 파렴치한 불공정거래를 한 사람들에게 철퇴를 가하기 위해서라도 배후세력은 철저히 가려져야 한다는 게 증권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세신실업서 제보>
○…김차장과 큰손들이 싸고 주가조작을 통해 큰 차익을 남기려한다는 정보가 증권감독원에 입수된 것은 지난 7월중순경.
이들이 세신실업주식을 대주주(노성권)의 지분율(26%) 보다 많이 사들이고, 또 많은 주식을 근거로 동사에 무상증자 압력까지 가하자 다급해진 세신실업 경영진이 증권감독원에 그 같은 사실을 제보함으로써 특별검사가 실시됐다.
그러나 훨씬 이전부터 한신증권의 한 임원이 특정기업의 주가를 조작하고 있다는 소문이 증권가에 파다하게 나돌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신실업의 주식은 지난 5월까지만 해도 하루 거래량이 2천주 정도밖에 안됐으나 지난 6월8일부터 비정상적으로 거래량이 늘기 시작해 감독원이 특별검사를 시작하기 직전인 7월18, 19일 이틀동안은 하루 8만주이상이나 거래됐었다.
이 때문에 증권거래소에서도 불공정거래 여부를 따지기 위해 특별 매매심리까지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전체거래량의 40%이상이 한신증권의 테헤란로지점에서 이뤄진 사실이 드러났고, 직원들에 대한 집중조사 끝에 김차장이 핵심인물임을 밝혀냈다는 것이다.
감독원 조사결과 드러난 큰손 3∼4명은 부동산투기 등으로 떼돈을 번 사채업자들로 하루에도 수억원씩 굴릴 수 있는 자금동원능력이 있다는 것.

<제3인물 추측도>
○…그렇다면 김차장과 이른바 큰손들은 왜 하필이면 잘 알려지지도 않은 세신실업 주식을 주가조작의 대상으로 삼았을까. 또 어떤 방법으로 시세조정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증권감독원은 이들이 세신실업을 택한 이유에 대해 유보율이 높고 ▲유·무상증자를 실시한 적이 없으며 ▲기업의 장래성이 밝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세신실업 측과 투자자나 한신증권 사이에 다리를 놓고 있는 사람은 없는가 하는 의아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현재 증권감독원은 이 같은 점을 감안, 세신실업에 대해서도 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차장과 큰손들은 세신실업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뒤 증시에 가장 큰 호재라고 인식되는 「무상증자 실시설」을 시장에 퍼뜨려 주가를 끌어올리고 주가가 급등한 틈을 이용해 되팔아 큰 시세차익을 남긴 것이다.
특히 이들의 주가조작으로 인해 세신실업의 주가는 지난 6월14일 동사가 증자설을 부인했음에도 한 달 남짓 만에 2만원에서 2만7천원으로 35%나 뛰었다.
지금까지 상장사의 대주주나 임원이 시세조종을 한 경우는 광덕물산 등 수없이 많았으나 투자자들이 증권사와 통정매매를 한 것은 처음이다.

<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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