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 가관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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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정치권, 특히 야당권의 움직임을 보면 한마디로 가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과 보름 전에 3김씨가 그렇게 정답게 웃으며 손을 맞잡고 공조를 다짐하더니 이제 와서 어찌된 영문인지 2김과 1김으로 나뉘어 티격 대격을 계속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이유와 기준에서 이들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벌어졌다가는 가까워지고 하는지 보통 사람들로서는 측량할 길이 없다.
3김 회담의 합의 사항을 두고도 2김 말이 다르고 1김 말이 다른가하면 5공 청산의 방법에 대해서도한 쪽이 영수 회담을 하자고 하면 다른 쪽에서는 불필요론을 제기하는 등 갈피를 잡을 수 없다. 7개월만에 이뤄진 3김 합의가 보름도 못 가고 있다.
이런 정치 행태로 말미암아 그들이 내세운 5공 청산 작업은 물론 예산안 심의도, 각종 입법을 통한 제도 개혁도 무엇 하나 되는 것이 없는 채 아까운 세월만 허송하고 있다.
우선 무엇보다도 왜 예산안 심의를 하러 하지 않는가.
정부·여당이 5공 청산을 않으면 예산 심의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소위 연계 투쟁은 과거 독재하에 소수 야당이 취하던 전술이었다. 권위주의적 정권과 다수 의석을 차지한 여당에 대해 다른 투쟁 수단이 없었을 때 야당이 예산안과 연계시켜 저항하고 여당의 양보를 받아내는 것은 용인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야대」가 되어 민주화를 추진한다는 시대에 그런 구태의연한 전술에만 매달린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벌써 예산 심의 기간을 1주일 이상 까먹었는데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가다가는 결국 시한에 몰려 졸속 심의를 하기가 신상이다. 그럴 경우 그 피해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국민만 손해보게 된다.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인들이 지난여름 수재 복구비도 확정 시켜주지 않고 있는 처사를 수재민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우리는 국회가 즉각 무조건 예산 심의에 착수하는 것이 옳다고 보며 야당들의 태도 전환을 촉구한다.
5공 청산 문제에 있어서도 한쪽이 선 증언을 주장하면 다른 쪽이 선 핵심 인물 처리를 주장하고, 제도 개혁부터 논의하자면 증언부터 듣자고 하는 식으로 야당들의 태도는 종잡을 수 없다.
같은 방식이라도 한 김씨가 주장하면 다른 김씨가 반대하고, 5공 청산 자체보다는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당 역시 전 대통령들의 증언과 5공 핵심 인물 처리에 있어 정말 할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정신이 없는 것 같고 겉 다르고 속 다른 상태에서 여전히 방황만 하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협상다운 협상도 없는 것 같고 정기 국회의 회기만 보내고 있다. 입으로만 연내 5공 청산을 되풀이 할뿐 여도 야도 실제 5공 청산을 하려는 것인지, 말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다.
우리는 여기서 또 이번 국회의 할 일이 얼마나 많고 그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들인가를 되풀이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정치권이 이런 할 일들을 않고 국민이 납득 못할 변덕이나 부리면서 그 중에는 교통 순경 따귀나 때리는 사람까지 나오는 정치 판을 계속한다면 여야 할 것 없이 국민의 엄청난 부신과 경멸 밖에 얻을 것이 없음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예산 심의에 들어가고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이것 먼저, 저것 나중에라고 선후를 따지지 말고 예산 심의, 5공 청산을 위한 협상, 제도 개혁 등 할 일들에 전면적으로 부딪쳐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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