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원칙` 없는 불임 시술

중앙일보

입력

내 아이의 세포에 원치않는 다른 사람의 유전자가 섞여 있다면 부모의 기분은 어떨까. 실제 미국에 이런 아기들이 태어났다. 소위 `세포질 이식` 이라고 하는 현대의학 덕분이다.

그런데 이것이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한 불임전문 산부인과에서도 이런 아기를 만들기 위해 연구를 했고, 임신한 사실이 확인됐다. (본지 9일자)

기사가 나가자 불임시술기관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나는 신기술 개발과제를 검토해 윤리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들은 재검토하거나 철회하겠다는 자세다.

또 하나는 의학적.경제적 이득을 무시하지 말라는 항의다. 지나친 윤리적인 잣대는 수혜자인 불임여성에게 불행을 주고, 엄청난 부가가치를 가진 기술개발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과연 우리가 과학기술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는 것일까.

불임시술만큼 의료기술과 윤리가 충돌하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일례로 의사들은 많은 난자를 얻기 위해 불임여성에게 배란촉진제를 사용한다. 이렇게 얻은 난자로 10~20개의 수정란을 만들고 이중 3~5개를 자궁에 이식한다.

물론 수정란의 착상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문제는 자궁에 집어넣은 수정란이 대부분 임신으로 연결됐을 때 발생한다. 이때부터 산모는 원하지 않은 다태아에 당황하고 의사는 누구를 죽여야 할지 고민을 시작한다.

남는 수정란 폐기문제만 해도 그렇다. 시험관아기 시술에 불가피한 산물이지만 더이상 필요없는 수정란을 병원측은 관리비라는 이유 때문에 폐기한다.

하지만 그 정도면 나은 편이다. 일부에선 이 수정란을 배양해(배아를 만들어)실험용으로 사용한다고도 한다. 정자은행 운영은 또 어떤가. 정자제공자가 턱없이 부족해 한 명의 정자제공자를 불임여성 10명까지 사용하기도 한다.

불임의 한(恨)을 풀어주려는 의료기술과 이에 맞서는 윤리문제는 숙명적인 동거관계다. 문제는 최선의 균형을 어디서 찾느냐는 것이다. 결국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차제에 의료전반에 관한 사회적 장치와 관련제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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